[곽재원의 4차 산업혁명] 2021년은 신흥 제약사들의 대약진의 해

입력 2021-11-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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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교수,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코로나19 팬데믹을 기회로 신흥 바이오 기업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코로나19로 시가총액을 늘린 세계 제약회사를 살펴보면 신흥 미국 모더나가 1위에 올랐다. 시가총액이 150조 원 늘어나 기존 대기업의 증가액을 웃돌았다. 거액의 자금을 투자자로부터 모아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신흥세가 창약(創藥)을 견인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직 그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조사기관인 퀵 팩트셋이 세계 제약회사들의 2019년 말과 2021년 10월 28일 현재 시가총액을 비교해 증가액이 많은 순으로 순위를 매겨 최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위는 코로나19용으로 메신저 RNA(mRNA) 백신을 실용화한 모더나로 나타났다. 시가총액은 약 159조 원으로 2019년 말보다 약 152조 원 늘었다. 지난 2010년 설립된 후 시판약 실적이 없었던 모더나의 시가총액 증가는 랭킹 2위의 미국 일라이 릴리(약 138조 원)를 포함한 기존의 제약 대기업을 웃돌았다.

스위스 로슈(1896년 설립, 시가총액 87조 원 증가), 미국 존슨 앤드 존슨(1886년, 69조 원 증가), 독일 머크(1668년, 62조 원 증가), 미국 화이자(1849년, 39조 원 증가) 등 모더나의 시가총액 증가액이 전통 대기업의 실적을 압도했다.

모더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자들과 유력 벤처캐피털들이 공동창업한 기업이다.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등 상장 전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지원받아 왔다. 2018년 12월 기업공개(IPO) 당시 시가총액은 7조 원 정도에 불과했다. 모더나가 고성장하고 있는 비결은 조달한 자금을 적자를 각오하며 특정 영역에 집중 투자하는 스타트업 특유의 경영전략이다. 이를 지켜보며 꾸준히 지원해 준 미국 정부의 의지와 연구개발 시스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컨대 모더나는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0년 12월기 연결기준 매출이 약 8억 달러(약 9100억 원)를 기록했지만 연구개발에 13억 달러나 투자했다. 최종 손익은 7억 달러 적자였다. 하지만 2021년 1~6월기에는 백신이 경영에 본격 기여하면서 약 40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했다. 위기 하에서 확보한 현금을 지렛대로 삼아 앞으로 암 치료 영역 등에 기술을 응용한다고 한다.

시가총액을 70조 원 늘려 랭킹 7위에 오른 독일 바이온텍(2008년 설립, 시가총액 78조 원)도 mRNA 기술의 연구개발에 특화했다. 공동 창업자로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우구르 샤힌 박사가 ‘라이트 스피드(광속)’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랭킹 14위의 미국 대기업 화이자와 협력해 11개월 만에 백신을 실용화했다. 화이자 등 거대 제약사는 종합적인 자금력에서 신흥기업들을 훨씬 능가한다. 화이자의 2020년 12월기 연구개발비는 94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대기업은 특정 영역에 경영 자원을 집중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균형과 안정 성장을 요구하는 투자자의 요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스크가 높은 최첨단 영역에서는 신흥기업과의 협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 단기간 개발이 요구되는 코로나19 관련 의약품에서 그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일라이 릴리의 링거약은 2012년 설립된 중국의 상하이 준시 바이오사이언시스(上海君实生物医药科技股份有限公司)의 기술이 바탕이 되었다. 랭킹 4위인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는 내복약을 2012년 설립한 미국 아테아 파머세티컬스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세계 거대 15개 제약회사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20년 18.6%로 2011년보다 약 4%포인트 상승했다. 계속 늘어나는 연구개발비는 경영에 무거운 짐이 돼 그 규모를 새로 늘리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대기업 사이에서는 최첨단 기술을 가진 국내외의 신흥기업이나 연구기관과 손잡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온텍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화이자는 지난 2일 올해 코로나19 백신의 매출이 360억 달러(약 41조 원)가 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통상 2회 접종에 더해 3차 ‘부스터 접종’과 어린이용 접종이 늘어날 것으로 가정해 당초 예상액 335억 달러에서 전망치를 올렸다. 내년 매출은 290억 달러(약 3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이자는 10월 말 현재 총 20억 회분의 코로나19 백신을 152개국·지역에 공급했다고 한다. 공급량은 내년에 17억 회분, 생산량은 40억 회분에 이를 전망이며, 각국 정부 등과의 계약에 따라 매출액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백신 매출이 늘어나면서 올해 화이자 전체 매출액은 최대 820억 달러(약 93조 원)로 지난해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할 전망이다. 40% 이상을 코로나19 백신이 차지한다는 계산이다.

선진국에서는 부스터 접종도 시작되는 반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접종이 부진한 ‘백신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화이자는 올해 생산물량 중 최소 10억 회분은 중·저소득국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이자와 바이온텍의 협력은 각자에 최고의 경영실적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글로벌 백신격차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제 제약사들의 경쟁은 백신에서 치료제로 확대되고 있다. 치료제 형태도 주사제에서 먹는 약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도 신흥기업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이들이 대기업과 활발한 합종연횡이 진행되는 세계적 트렌드를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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