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근 금융부 기자
금융당국이 고강도 가계대출 총량관리규제에 나서면서 시중은행이 신규 대출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대출난민’이 양상되면서 당장 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은 아비규환이다. 대출이 막히면서 분양받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거나 전세 계약을 파기하는 등의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집값, 전셋값 상승으로 주택담보대출 등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출을 규제하자 실수요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잡겠다며 연간 대출 총량을 6% 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못 박았다. 정부의 엄포는 은행권의 대출 중단으로 이어졌다. NH농협은행은 지난 8월부터 전세대출을 포함한 모든 가계 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달 29일부터 전세자금 대출, 입주 잔금대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하나은행은 15일부터 임대차 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 한도를 줄인다. 시중은행의 대출 중단은 지방은행까지 확대되고 있다. BNK경남은행도 12일부터 전세자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일부 신용대출 등에 대한 신규 접수를 중단했다.
내주 가계부채 보완 방안을 앞두고 있는 금융위는 사면초가에 놓였다. 가계대출을 줄이면서 전세자금 같은 실수요자들의 대출은 막지 않는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결국 결단을 내렸다. 고 위원장은 14일 “전세대출 증가로 총량제한이 6%를 넘어서더라도 이를 용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정한 올해 가계대출총량 6%대 증가율 목표에서 전세대출을 제외하겠다는 뜻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입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서민 실수요자 대상 전세 대출과 잔금 대출이 일선 은행 지점 등에서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금융당국은 세심하게 관리하라”고 당부했다. 당장 급한 불은 껐다. 문제는 내년이다. 연말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대책인 만큼 내년부터는 또다시 실수요자들의 탄식이 이어질 수 있다. 총량 제한에 얽매여 실수요자들을 외면하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답습하지 않길 바란다. 금융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