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추석, 동상이몽의 산부인과 병동

입력 2021-09-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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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올 추석도 ‘역시’였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나는 연휴가 기다려지기보단 두렵다. 특히 빨간 날이 사나흘 되는 추석 같은 명절 연휴는 더 그렇다. 중소병원들의 휴진 역풍(逆風) 때문에 이번 추석에도 평소보다 두세 배는 많은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려왔다.

과중한 업무로 지칠 때쯤, 나는 추석 같은 명절에 우리 과를 찾아오는 환자들을 유심히 관찰해 일정하지만 재미있는 패턴을 하나 찾아냈다. 산과 병동은 평소보다 많은 환자들로 병실이 부족해서 난리이고, 부인과 병동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텅텅 빈다는 사실. 산부인과 의사는 한 명이지만 사실 산부인과는 크게 산모를 진료하는 산과(産科)와 부인암 등을 진료하는 부인과(婦人科), 이 둘로 나뉜다. 두 분과(分科)는 환자의 연령대도 다르고 다루는 질환의 종류도 전혀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른 과나 다름없다. 이러한 이유로 두 분과는 병동도 완전히 따로 쓰는데, 명절이 되면 두 병동은 평상시와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리 과 환자들은 ‘환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며느리’이거나 ‘시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과 환자들에게만큼은 명절은 연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듯,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은 며느리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큰 스트레스이지만, 시어머니에게는 오랜만에 아들 내외를 만날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기회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 때문일까? 며느리 역할을 해야 하는 산과 환자들은 명절이 되면 없던 병이 생기고, 반대로 시어머니 역할을 해야 하는 부인과 환자들은 명절이 되면 있던 병도 사라지는 신기한 일이 생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산과 병동 며느리들은 어떻게든 퇴원을 미뤄 이참에 시댁 어르신들 눈을 피해 병원에서 쉬고 싶은 꼼수가 생기는 듯하다. 반대로 부인과 병동 시어머니들은 이날만을 기다렸다며 아들 내외에게 줄 음식을 마련해야 하거나 손주들을 만나러 가야 하니 어떻게든 퇴원을 앞당겨 달라고 조른다.

같은 여자, 같은 병원, 같은 침상에서, 같은 날을 두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니 ‘동상이몽’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의 ‘며느리’나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내게는 모두 같은 ‘환자’인데 병상에서조차 본인의 병세보다 명절을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가 걱정인 것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홍유미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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