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이슬람법 통치” 선언한 탈레반, 아프간 ‘인권 암흑기’ 돌아오나

입력 2021-08-19 17:55수정 2021-08-3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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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 20년 만에 아프간 재점령
시내 검문소 설치하고 공포 분위기 ‘인권 유린’ 정책
국제사회 ‘인권 탄압’ 눈총에 “여성 인권 존중” 선언
국민 “인권 암흑기 도래”…女패럴림픽 출전도 좌절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 병사들이 현지시각 18일 수도 카불에서 M16 소총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카불에 입성한 탈레반 지도부는 사면령을 내리고 여성 인권 보호를 약속하는 등 유화책을 내놨다. (카불=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2001년 11월 미군과 반(反) 탈레반 연합군에게 쫓겨난 탈레반은 20년 만에 수도 카불을 다시 손에 넣었다. 지난 4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주둔 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선언한 지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탈레반 “아프간은 민주주의 국가 아니다…이슬람법 통치” 선언

탈레반 정권을 잡자마자 ‘이슬람법’을 내세우며 이빨을 드러냈다.

탈레반 고위 사령관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18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간 국민의 99.99%가 무슬림이고 이슬람을 믿는 만큼, 이슬람법을 적용해 통치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과거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도 이슬람법을 앞세워 사회를 엄격하게 통제했다는 점이다. 이 시기는 ‘인권 암흑기’로 불린다.

벌써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탈레반은 현재 카불 시내 전역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보행자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수색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탈레반에 대한 반감을 억누르는 한편, 완전한 장악을 위해 인권을 짓밟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날 아프간 북동부 잘랄라바드시(市)에서는 탈레반 통치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탈레반이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로이터는 이번 사태로 최소 3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날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현지 언론 기자와 다른 언론 TV카메라맨이 구타당했다고 전했다.

BBC에 따르면 탈레반은 도시 전역에 검문소를 배치하고 있다. 탈레반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과 여성 인권 존중을 약속했지만, 거리에서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하고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면서 며칠 전 그들이 낸 성명이 무색해졌다.

▲현지시각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 공항에서 활주로를 따라 이동하는 미국 공군 수송기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탈출하기 위해 매달리고 있다. (카불=AP/뉴시스)

국제사회 눈총에 “여성 인권 존중”…하루도 안 돼서 충격 총살 사건

특히 우려되는 것은 여성 인권이다. 1996~2001년 1차 집권기 당시 12세 이상 여성들은 학업·취업을 비롯한 사회적 활동 기회를 박탈당했다. 모든 여학교가 폐쇄됐고, 남자 보호자 없이는 외출은커녕 몸이 아파도 병원을 갈 수조차 없었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다.

국제사회에서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탈레반은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도 수업을 받고 취업할 수 있도록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탈레반 정치국 대변인 수하일 샤힌도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반드시 히잡(이슬람 여성들의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을 착용해야 하지만, 세상에는 부르카(눈 부위가 망사로 된 이슬람 여성들의 전신을 덮는 의상)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히잡이 있다”면서 ‘엄격하게 부르카를 강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와히둘라 하시미 사령관은 ‘이슬람 율법학자위원회’를 거론하며 태도를 바꿨다. 그는 “여성의 역할과 여학생의 등교 여부 등 정책을 결정하는 율법학자위원회가 존재한다”면서 “여성이 히잡을 쓸지, 부르카를 착용할지, 아바야(이슬람 여성들의 얼굴을 덮지 않는 전신 로브)에 베일을 더한 옷을 입을지 그들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프간 북동부 타카르 지방에서 한 여성이 피범벅이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미국 폭스뉴스는 이 여성이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의해 사살했다고 전했다.

▲2020 도쿄패럴림픽에 출전이 무산된 아프가니스탄 여성 장애인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 모습. (연합뉴스·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위원회)

아프간 여성 첫 패럴림픽 출전 가로막혀…“도와달라” 영상 메시지

탈레반은 올림픽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2020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하려던 아프간 대표 선수단이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안 사디키 아프가니스탄 패럴림픽 대표팀 단장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두 선수가 카불에서 나오지 못했다”며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번 대회에 2명의 선수를 파견할 예정이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이 여성 장애인 태권도 선수인 자키아 쿠다다디(23)다. 쿠다다디는 아프간 첫 여성 패럴림픽 선수를 목표로 대회 준비에 전념했다.

로이터가 공개한 쿠다다디의 영상 메시지에 따르면 쿠다다디는 현재 가족과 지내고 있지만,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쿠다다디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대표로서 도움을 청한다. 도쿄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면서 “전 세계 여성들과 여성 보호를 위한 기관, 모든 정부 기관에 촉구한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시민이 패럴림픽에 나설 권리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운동선수들은 탈레반 재집권 이후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운동선수 개념이 받아들여진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여자, 특히 장애인 운동선수에 대한 인식은 한층 더 부정적이다. 장애인 운동선수는 이전 아프간 정부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탈레반 집권 하에 상황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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