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수십 대 경쟁률 공기업 '금턴'…뽑히면 정작 '독서실 인턴'?

입력 2021-08-1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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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 동안 자리 없이 자격증 공부만 했다"
공기업·공공기관 인턴, 높은 경쟁 뚫어도…
일 없이 공부만 하는 '독서실 인턴' 비일비재

▲지난달 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청에서 열린 '청년층 고용을 위한 일자리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하반기 빅3 공공기관 한 곳에서 3개월 체험형 인턴으로 일한 A 씨는 "인턴 기간 내내 자격증 공부만 했다"고 회상했다. 배정받은 업무도 자리도 없었고, 노조 사무실이나 회의실 같은 빈 곳에 의자만 가져다 놓고 앉아 있었다. 명목상 부서 배치는 있었지만, 부서 관련 일은 거의 받지 못했다.

A 씨는 입사 후 꽤 시간이 지난 뒤에야 회사에서 필요 없는 인력인데, 정부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뽑았다는 설명을 들었다. 할 일이 없으니 출근하면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는 "돈도 받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이력서에 한 줄 적어 좋았지만, 솔직히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취업 준비생이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체험형 인턴이 돈 주는 독서실이 맞냐"며 질문했다. 댓글에는 "이름있는 공기업 했는데 돈주는 독서실이었다", "기업·부서마다 다르다" 등의 답변이 올라왔다. (출처=취업 준비생 커뮤니티 '공취사' 캡처)

취업 시장이 점점 치열해지며 안정적인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3개월 단기 인턴 자리도 수십 대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정도다. 그러나 힘들게 입사해도 실제 업무 경험은커녕 가만히 앉아 자기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기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독서실 인턴’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사실 공공기관의 독서실 인턴이 새롭게 등장한 현상은 아니다. 그동안 3개월 단기로 진행되는 공기업 체험형 인턴은 '무늬만 인턴'이라는 지적이 끝이지 않았다. 쓰고 버린다 해서 '티슈 인턴'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2년 전, 모 공기업에서 3달간 사무보조 인턴으로 일했던 B 씨가 업무 시간 동안 한 일은 대기업 '인적성' 시험공부였다. 함께 인턴을 했던 동기는 CPA 시험을 공부했다. 그는 당시를 두고 "완전 독서실 인턴이었다"고 설명했다.

취준생이 원하는 건 경험·성장보다 가산점?

▲5월 2일 대구 북구 엑스코(EXCO)에서 치러진 2021년도 대구도시철도공사 신입사원 채용 필기시험 현장. 96명을 채용하는 이번 시험에 총 3547명이 지원, 36.9: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뉴시스)

실제 공기업 인턴에 지원하는 취업준비생들도 뛰어난 업무 경험과 성장을 기대하며 지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독서실 인턴이 더 좋다거나, 바쁜 인턴 업무에 치이느니 NCS 공부하거나 자격증 공부하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 하반기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의 3개월 체험형 인턴 채용에 지원한 C 씨는 "사실 인턴으로 뭘 대단한 경험을 얻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가산점을 얻을 수 있고, 공백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 씨가 무사히 원하는 인턴 자리를 손에 넣으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인국공은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공기업으로, 체험형 인턴도 경쟁이 치열하다. C 씨가 지원한 일반 사무직 인턴의 경쟁률은 32.85:1이다. 이전까지 서류와 면접으로만 인턴을 선발했으나, 이번 채용에서는 NCS 필기시험이 추가됐다.

C 씨는 인턴 서류 전형을 통과해 지난 7일 NCS 필기시험을 치렀다. 그는 "문제도 어렵고 시험 시간도 부족했다"며 "경쟁이 치열한데 과연 그 안에 들 수 있을까"며 한숨을 쉬었다. 만약 필기를 통과해도 실제 정규직 공채를 위한 가산점을 따기는 쉽지 않다. 근무 중 우수 평가를 받은 인턴에게만 가산점이 주어지는 데다가 인턴 가산점도 공채에서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정규직 일자리 줄고…'체험형 인턴'만 늘어난다

▲지난해 1월 8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0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를 찾은 학생과 구직자들이 채용 관련 정보를 얻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 인턴의 업무 강도가 현저히 낮은 건 아니다. 기업·부서마다 천차만별이다. 올해 3개월간 공공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한 D 씨는 "기관에서도 문제를 인식해 나름대로 인턴에게 업무 참여를 시켜주려고 했으나 부서마다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바쁘게 일하며 실제 업무 경험을 쌓는 인턴도 있다. 서울 소재 공공기관에서 1년간 인턴십을 했던 E 씨는 같은 기관에서 두 부서를 돌며 각기 다른 업무 강도를 겪었다. 첫 부서에서는 여유롭게 개인 공부할 시간이 있었지만, 두 번째 부서에서는 실무를 경험하며 바쁘게 일했다.

E 씨는 "(바쁜) 두 번째 팀에서의 근무가 첫 번째 팀의 인턴 근무 때보다 월등히 좋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확실히 자기소개서에서 쓸 수 있는 경험은 두 번째 팀에서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팀에서 책임감도 더 많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인턴십의 질은 천차만별로 다르지만, 마땅한 개선 방안은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체험형 인턴 자리는 점점 늘고 있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있다. 공기업·공공기관 경영정보 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36개 공기업이 채용하는 체험형 인턴은 지난 4월 기준 지난해보다 4.5% 늘었다. 반면 이들 기업의 상반기 정규직 채용은 지난해 대비 39.1%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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