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각 최초안을 제시한 후, 재협상을 거쳐 수정안 제출을 반복하고, 최종단계에 이르면 양측 안을 표결에 부친다. 정상적인 표결 과정에서는, 공익위원 9명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기 때문에, 양측 수정안 중 더 공익에 부합하는 안으로 결정된다. 언뜻 보면 이러한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양측의 입장 차를 좁히고, 현실적인 최저임금을 도출하는 효과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일단 근로자 측과 사용자 측 모두 상대의 최초안을 보고 난 후에도 여러 차례 수정안을 낼 기회가 있다는 점, 그리고 최초안에서 많이 수정할수록 자신들이 양보했다고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로자위원은 비현실적으로 높은 최초안을, 사용자위원은 비현실적으로 낮은 최초안을 제시하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이후 재협상을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현실적인 금액을 제시하는 것은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양보하는 것이다. 실제 근로자 측은 2017년에 이후 5년 연속 1만 원 이상을 최초안으로 고수하고 있으며, 사용자 측은 2018년 이후부터 4년 연속 동결 혹은 삭감을 최초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협상 난항 시 공익위원들의 중재가 예정되어 있다면, 최적의 전략은 강한 반발과 함께 회의를 보이콧하는 것이다. 양자 간 부드러운 ‘양보’보다는 강한 ‘반발’이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심의촉진구간’과 ‘공익위원안’을 자신들에게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2021년도 최저임금 결정 당시 근로자위원 일부 퇴장, 2022년도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사용자위원 전원 퇴장이 반복되는 것은 이런 전략과 무관치 않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약간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했던 2020년도 최저임금 결정 당시에도 사용자위원이 불참 선언을 했고, 최종 표결에서 공익위원안인 8350원이 근로자위원 측 수정안 8630원을 꺾고 의결된 것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간단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반복되는 재협상 과정을 없애고,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양측 모두 최종안을 한 차례만 제출하도록 하자. 그에 앞서 공익위원들만의 비공개 회의를 통해 각자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금액을 제출받아, 그들의 평균치를 양측의 최종안과 함께 공개하자. 그리고 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 측의 최종안 중 공익위원 평균치와 격차가 큰 안을 해당 평균치로 대체해서 표결에 부치자.
예를 들어, 근로자위원 측이 1만 원, 사용자위원 측이 8000원을 제출했다고 가정하자. 만약 공익위원들 평균치가 9000원을 초과하면 1만 원과 그 평균치를 표결에 부치고, 만약 해당 수치가 9000원 미만이라면 해당 수치와 8000원을 표결에 부치는 방식이다. 전자가 예상되면, 사용자위원들이 애당초 8000원보다는 높은 금액을 써 낼 것이고, 이를 감안하면 근로자위원들 역시 1만 원보다는 낮은 금액을 제시할 것이다. 후자가 예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에나 양측 모두 공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방식은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들 간에 충분한 사전 토론을 전제로 하지만, 이는 현행의 방식도 마찬가지다. 공익위원들의 숫자를 충분히 늘리고, 이들의 비밀투표만 보장된다면, 더 공익에 부합되는 의견으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의결하고, 회의가 재개와 결렬이 반복되는 불필요한 행정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다섯 번의 최저임금 결정 과정 중 세 번이나 격론 끝에 한 쪽이 퇴장하고, 공익위원 안으로 의결되었다. 내년 5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현 정부에서 최저임금 결정 제도를 개선하여 차기 정부에 물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