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OECD 안에서도 한국은 선진국…인식·관행 개선은 과제”

입력 2021-07-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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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의식·행동 변화에도 잘 대은한단 평가” “한국 성평등은 제도적으로 상당 부분 개선” “성역할 고착화, 임신·출산 불이익 등 개선해야”

▲양현수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일등서기관(원소속 고용노동부). 사진=본인제공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사이에선 한국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사회 발전보다 경제 발전이 빨랐던 한국의 특수성을 함께 평가하기 때문이다.”

양현수 주OECD 대한민국대표부 일등서기관(원소속 고용노동부)이 3년간 OECD에서 일하며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평가가 국내 언론 등의 평가보다 후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데도 한국의 인식·문화 개선이 더디다는 것이다.

양 서기관은 고용부 미래고용분석과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등을 거쳐 2018년부터 주OECD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일하고 있다.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모태인 OECD에서 한국은 변방일 수밖에 없지만, 양 서기관에게는 OECD 내 한국의 위상이 여타 유럽 선진국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회원국들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특히 취약한 지표는 성별 임금 격차와 노인빈곤율”이라며 “국내에선 두 지표를 근거로 한국이 굉장히 후진적인 것으로 표현되는데, 회원국들 사이에선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취업성공패키지 같은 취업 지원정책들은 OECD 보고서에서 우수사례로 언급된다”며 “사회는 전반적인 국민의식 또는 행동 변화를 통해 발전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비교적 잘 대응해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 서기관은 또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 사이에 있어 작아 보이지만, 한국을 북유럽에 가져다 놓는다면 모든 면에서 대단히 큰 나라가 된다”며 “일부 지표를 제외하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OECD 내 최대 화두는 포용성이다. 그중에서도 양성평등 문제가 많이 다뤄진다. 다만 한국에서 양성평등은 지향점보단 갈등요소로 많이 부각된다.

양 서기관은 “각국 OECD 대사들이 모임인 프렌즈 그룹이 있는데, 그중 양성평등에 관한 그룹도 있다”며 “한 번은 여성의 정치적 권한을 주제로 논의가 있었는데, 그때 한 대사가 아들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했다. 아들들과 뉴스를 보던 중 어떤 나라에서 남성 총리가 선출됐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아들이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 총리, 여성 정치인이 많다”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근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양현수(왼쪽 첫번째) 서기관과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대표부 직원들.

한국 사회에서 성차별은 주로 제도적 차원에서 개선세가 뚜렷하다. 양 서기관이 공직생활을 시작한 20여 년 전만 해도 시험 합격자 중 여성 비중이 할당량(20%) 수준밖에 안 됐는데, 최근에는 남녀 성비가 역전된 직렬·직급이 늘어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인식과 관행이다.

그는 “한국은 사회적으로 성역할이 엄격히 구분돼 있다. 여성은 회사 일에만 몰두하려고 해도 출산·육아 등 다른 일들이 겹친다”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보육의 책임자는 엄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를 부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조직에서 여성의 수가 늘어나도 그 중심은 남성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다. 그는 “비교지표로 성평등지수를 산출할 때 항목마다 가중치를 달리 적용하는데, 그중에서도 임금 격차의 가중치가 크다”며 “한국은 남녀 임금 격차가 세계 1위다. 그래서 지표상으론 한국이 성차별이 굉장히 심한 국가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는 산업·직종별 성별 쏠림에서 기인한다. 그는 “입시부터 여성들은 호텔, 미용, 요식, 보건·복지 등 서비스업 관련 전공 비중이 큰 전문대에 많이 진학한다”며 “취업에서도 임금이 낮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 비정규직에 여성 쏠림이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학력 여성들도 경력단절 이후에는 유사 직종에 재취업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론 ‘여성은 좋은 직장에 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이런 인식이 입시·취업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양 서기관은 “구조적 문제들은 갈등과 혐오로 해결할 수 없다”며 “먼저 임신·출산에 따른 불이익을 해소하고,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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