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위험이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라면 법률상 의무를 하지 않았어도 업무상배임을 실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업무상배임미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A 씨는 도시개발사업 시행자인 피해자 조합을 위해 환지계획수립 등 업무를 수행했다. 2011년 8월 이 사업 관련 도시개발 및 실시계획 변경이 인가되면서 일부 환지예정토지의 경제적 가치가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가치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해 조합이 적절한 청산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아 조합에 손해를 입히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A 씨가 친인척과 지인 등 환지예정지를 받기로 한 사람에게 토지 가치상승액의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피해자 조합이 총 34억여 원의 손해를 입게 하려 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조합이 환지계획변경인가신청 절차를 진행하면서 무산됐다.
재판에서는 A 씨가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업무상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 씨의 부작위, 작위의무 지연으로 조합의 청산금 지급청구권 행사가 위태롭게 됐다든가 하는 직접적인 위험이 초래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해자 조합 관련 업무에 관해서는 A 씨가 가장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은 쉽게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거나 관련 사항을 인계하지 않은 채 퇴사해 업무상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인정해야 한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 씨에게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 조합이 환지예정지의 가치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구체화한 상태에서 작위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부작위로써 업무상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작위를 업무상 배임죄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행위자는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반한다는 점과 손해 발생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식했어야 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