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모순 투성이 탈원전 이제라도 접어라

입력 2021-06-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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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주 열린 환경분야 다자회의인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더 높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최국의 체면을 과시하려 무리수를 둔 건데, 또 기업이 써야 할 덤터기다.

정부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작년 12월 제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7년 대비 24.4%다. 목표를 30% 정도로 올리면 2017년 우리 탄소 배출량 7억900만t을 감안할 때 연간 4000만t가량을 더 줄여야 한다. 탄소배출권 거래가격(t당 2만 원)으로 단순계산해도 산업계에 추가되는 직접비용 부담이 8000억 원이다.

탄소중립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거스를 수 없는 국제 질서이자 세계의 공동 과제인 건 틀림없다.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捕集)해 땅속에 묻거나 나무를 심어 흡수해야 한다. 하지만 획기적 포집기술은 아직 미래의 일이다.

우리 산업과 수송, 건물 등의 에너지 시스템도 저탄소로 바꿔야 한다. 에너지를 무엇으로 공급하느냐가 관건이다. 정부는 전력으로 대체하고, 그 전력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자동차·철강·화학·조선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이 떠받친다. 에너지 생산은 아직 화석연료 의존형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탄소중립 목표다. 산업연구원은 “30년간 해마다 탄소배출을 10%씩 줄여야 하고, 이 과정에서 제조업 생산이 44%, 고용은 134만 명 감소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경제가 거덜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재생에너지를 추구하는 방향이 탈(脫)원전과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을 끌어들여야 탈원전의 정당성이 확보된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원전을 탄소중립의 첫째 대안으로 삼는 현실에는 눈감는다. 이들은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고, 원전을 더 짓는다. 중국이 원전 굴기(崛起)에 나서고, 중동 산유국들까지 원전 건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탈원전은 처음부터 진실을 부정하고 과학적 이해를 거부하며, 조작된 공포를 부추긴 이념적 선동이었다. 얼마나 기만적이고 오류와 모순투성이인지도 수 없이 입증됐다. 그가 2016년 말 ‘판도라’라는 허구(虛構)의 상업영화를 관람하고 감동받았다며 탈원전을 강조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규모 6.1의 지진에 원자로가 폭발하고 격납건물이 깨진다는, 한국 원전에서 가능성이 전무한 엉터리 시나리오였다. 근거 없는 왜곡과 공포가 탈원전 정책의 당위성이 됐다. 원자력에 대한 식견의 수준이 의문스러운 어떤 미생물학 교수가 탈원전 정책에 깊이 관여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새삼스럽지 않다. 그게 신앙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원전은 어떤 에너지원보다 경제적이고, 현대 산업설비 가운데 구조적으로 가장 안전하며, 탄소배출이 사실상 0이다. 탈원전과 양립할 수 없는 탄소중립에 매달리니 온갖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태양광과 풍력을 아무리 늘려도 경제적·기술적 한계가 뚜렷하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의 기저부하(基底負荷)를 감당할 수 없다. 그 설비를 까느라 광대한 산림을 파헤치고 바다를 뒤덮으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국토녹화로 애써 가꾼 30년 넘은 나무를 탄소흡수 능력이 떨어진다며 마구 베어내고 새로 심는다고 한다. 과학적 타당성도 없고 숲의 생태계와 공익가치만 무너뜨리고 있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원전을 억지로 폐쇄하고, 다 지어진 원전의 가동을 막고, 계획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느라 이미 수조 원의 돈이 날아갔다. 국민 세금과 늘어나는 전기요금으로 메워야 한다. 세계 최고 경쟁력의 우리 원전산업은 쑥대밭이 됐다. 한국에서 위험하다고 없애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고 한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에 합의했다. 이런 모순도 따로 없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차세대 에너지로 소형모듈원전(SMR)을 점찍고 건설에 나서기로 했다. 에너지 산업의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 주목받는 SMR에서 우리는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가를 따낸 최선두 국가였다. 하지만 탈원전이 그 역량을 스스로 망가뜨려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서 낙오하고 있다.

탄소중립 이전에 원전은 국가안보의 핵심이다. 우리는 전력이 부족해도 딴 나라에서 사올 수 없는 ‘에너지 외딴섬’이다. 원전산업이 붕괴되면서 북한 핵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핵기술과 인력 기반도 소멸되고 있다. 폐기해야 할 이유만 차고 넘치는 탈원전이다.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탈원전의 심각한 오류가 판명되고 있는데도 이를 부정하는 오기가 국가 재앙을 키우고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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