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독재는 어떻게 필리핀 경제를 좀먹었나?…다큐 '이멜다 마르코스:사랑의 영부인'

입력 2021-05-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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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생기를 잃은 필리핀 마닐라 도로 한복판. 곳곳에 부랑자가 넘치고 어린아이들이 구걸을 한다. 빨간 신호로 차가 멈추자, 노부인이 거리의 아이들에게 돈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부인의 적선이 계속되자 아이고 어른이고 모여 손을 차창 너머로 손을 뻗는다.

그의 지폐 세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아암 환자가 모여있는 아동 병원. 시설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부인은 병원을 둘러보더니 환자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그리고는 입을 삐죽 내밀며 이렇게 말한다.

"현 정부에는 따뜻한 마음이 없어요"

그의 이름은 이멜다 마르코스. 과거 21년간 장기 집권한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아내다.

▲길거리 아이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이멜다 마르코스. 그는 "제가 영부인이던 시절에는 부랑자는 없었다"면서, 자신의 아들을 차기 대권 주자로 민다. (왓챠)

다큐멘터리 '이멜다 마르코스:사랑의 영부인'(The kingmaker, 2019)은 미인 대회 출신의 소박한 시골 아가씨 이멜다가 어떻게 영부인이 되어 독재와 욕망의 화신이 되었는지 그 일대기를 다룬다.

이야기는 이멜다가 길거리에 돈을 나눠주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늘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자신을 치장한 그는 대중을 만날 때면 으레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일종의 포퓰리즘 전략이다.

▲카메라 앞에 선 이멜다의 뒤로 피카소의 그림이 걸려있다. 이멜다는 부정 축재한 재산으로 여전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왓챠)

그 많은 돈은 어디에서 났을까. 모두 집권 21년 동안 마르코스 일가가 축재한 국고다. 이멜다는 영부인 시절 사치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엄청난 쇼퍼홀릭이었다. 구두, 드레스, 가방은 기본. 부동산까지 쇼핑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멜다는 영부인 시절 기분이 내킬 때마다 뉴욕,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이멜다의 어마어마한 사치 행각은 정권이 무너지며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마르코스의 정적 아키노가 피살된 후 국민의 신임을 잃은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하와이로 망명했다. 시민들은 주인을 잃은 대통령 궁으로 쳐들어갔고 대통령궁의 화려함에 혀를 내둘렀다.

필리핀 사람들은 특히 이멜다의 사치 물품에 아연실색했다. 약 3000켤레에 달하는 명품 신발은 물론, 초고가 브랜드의 가방과 드레스까지. 그의 사치 행각은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마르코스 일가 망명한 뒤인 1986년 3월 11일 필리핀 말라카냥 궁에서 찍힌 이멜다의 신발 컬렉션. 이멜다 마르코스의 옷방에는 최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가방, 장신구들이 가득했다. (AP/연합뉴스)

마르코스 일가가 스위스 은행 등 해외로 은닉한 재산은 알려진 것만 12조 원에 달한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이후 국고로 환수된 금액은 약 40억 달러(4조 5000억 원)뿐이다. 국고를 마치 ATM처럼 취급했던 마르코스 일가는 미국의 원조 금액도 자기 돈처럼 썼다.

당시는 냉전 시대로 미국은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저개발 국가를 지원했다. 미국의 원조로 필리핀 각지에서 고속도로가 건설됐는데, 상당수 건설 공사에서 부정부패가 이뤄졌다.

만연한 부패는 부족한 사회 인프라 문제를 낳았고, 이는 지금까지도 필리핀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1960년 필리핀 1인당 국민소득(GDP)은 254달러로 한국의 3배를 넘었다. 하지만 2020년 필리핀 1인당 GDP는 3330달러, 한국은 3만 1497달러로 약 10배 넘게 차이가 난다.

▲2015년 10월 16일 장남 봉봉 마르코스의 부통령 선거 유세에 나선 마르코스 일가. 간발의 차이로 낙선한 봉봉은 선거 이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까지 나섰으나 큰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연합뉴스)

이멜다는 현재 자신의 장남 봉봉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 선거 운동 비용은 물론 독재 시절부터 쌓은 재산으로 감당하고 있다. 잃어버린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현 정권과도 손을 맞잡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페르디난도의 영웅 묘지 안장을 허가하고, 봉봉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왔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한 봉봉은 2016년 두테르테의 지지에 힘입어 부통령 선거에까지 나섰다. 간발의 차로 졌지만, 여전히 그는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손꼽힌다.

▲영부인 시절 이멜다는 쿠데타 걱정으로 필리핀을 비울 수 없던 남편 대신 해외 정상들을 만나며 외교 사절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해외를 순방하는 동안 마르코스 대통령은 불륜을 저질렀고, 이는 이멜다가 영부인으로서 비뚤어진 욕망을 갖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왓챠)

필리핀은 여전히 가난에 신음하고 있지만, 이멜다는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영부인 시절의 영향력이 그립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7년의 계엄령 기간 7만 명이 투옥되고, 3만5000명이 고문을 당했으며 3200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멜다는 그 시절을 "마르코스가 필리핀에 주권과 자유, 정의와 인권을 부여할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이멜다가 신경을 쓰는 건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오직 '외모'다. 다큐멘터리 카메라 앞에 서기 전, 화려하게 치장한 이멜다는 시중에게 "뚱뚱해 보여?"라고 묻는다.

그렇다. 욕망과 허영에 사로잡힌 그는 몹시 뚱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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