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지천명 아파트]①'땅 없는 설움' 중산시범 "동별로 땅 사게 해달라"

입력 2021-05-20 05:00수정 2021-05-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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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규제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노후 아파트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 시장 공약대로 재건축으로 주거 환경 개선과 자산 가치 향상을 노릴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그 시장에서도 소외받는 아파트가 있다. 토지 문제, 사업성 부족, 소유주 이견 등으로 재건축이 막힌 아파트다. 이투데이는 사람 나이로 지천명(知天命), 즉 준공 후 50년을 넘기고도 재건축 난항에 빠진 아파트를 찾아갔다.
<글 싣는 순서>
① '땅 없는 설움' 중산시범 "동별로 땅 사게 해달라"
② 창고로 전락한 '한때 최고급 주상복합' 동대문상가아파트
③ 재건축 막힌 덕에 직장인 전세 성지된 서소문아파트

“솔직히 사람이 살만한 데는 못돼요.”

서울 용산구 이촌동 ‘중산시범1차아파트’(중산시범아파트)는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상태였다. 빨간 벽돌을 층층이 쌓아올린 건물은 칠이 거의 벗겨져 회색 내벽이 드러나 있고, 벽 군데군데 실금이 가 있었다. 6동의 층계참 구석에는 언제 빗물이 들이쳤는지 물이 흥건했다. 벽에는 흰 곰팡이 자국이 가득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주민 A씨가 내려앉은 자신의 집 천장을 가리키고 있다. 김예슬 기자. viajeporlune@etoday.co.kr

이 아파트 입주민 A씨(74)는 “(준공) 당시는 ‘중산층’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중산시범아파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설명했다. A씨 집 천장은 일부가 기울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방 구석구석엔 빗물을 담을 양동이가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이웃 B씨는 “바닥에 캐리어를 두면 (바닥이 기울어) 그대로 굴러갈 정도로 열악하다”고 했다

1970년 준공된 중산시범아파트는 올해로 쉰 한 살이 됐다. 이 아파트는 1996년 재난위험진단 D등급을 받았다. 재난위험 D등급은 ‘주요 자재에 결함이 생겨 긴급 보수·보강이 필요해 사용 제한 여부를 판단해야 할 상태’를 뜻한다.

재건축을 할 수 있는 연한인 30년은 진작 지났다. 중산시범아파트 주민이 재난위험건물을 떠나지 못하고 버티는 건 재건축에 대한 기대에서다.

▲중산시범아파트가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됐다고 알리는 표지판. 김예슬 기자. viajeporlune@etoday.co.kr

그러나 중산시범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어느 아파트보다 어렵다. 아파트 건물과 토지의 소유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중산시범아파트 보유자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 가지고 있고 아파트 부지는 서울시의 소유다. 서울시가 토지를 매각해야만 재건축의 활로가 열린다.

서울시는 아파트 소유주 전체가 토지 매입에 찬성해야 토지 거래에 응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토지 매각이 아파트 소유주 모두의 재산권에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집 살 때 땅값도 냈다”며 일부 주민이 토지 유상 매입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서울시 조건을 맞추긴 쉽지 않다. 외국에 있거나 소재를 알 수 없어 의사를 물을 수 없는 소유주도 있다.

중산시범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아파트 부지 ‘통매입’을 포기하고 각개전투 전략으로 돌아섰다. 중산시범아파트 부지는 6개 동(棟)별로 하나씩, 여섯 개 필지로 이뤄져 있는데 각 동에서 75% 이상 동의를 받아 토지 소유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추진위는 이런 구상을 담은 민원을 조만간 서울시와 용산구에 제출할 계획이다.

용산구 이촌동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노식래 서울시의원 측은 “토지를 매입하겠다는 입주민들의 뜻이 강력하다”며 “중산시범아파트 재건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산시범아파트 전경. 김예슬 기자. viajeporlune@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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