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8. 독일에서 녹색당 총리 나올까

입력 2021-05-06 05:00수정 2021-05-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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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40년, 유럽 녹색정치의 맹아…이제 ‘집권’까지 넘본다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1983년 4월 18일 독일(서독)의 수도 본. 전달 치러진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들이 등장했다. 정장 차림의 의원들과 다르게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한 젊은 의원이 의사당에 들어오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방송사 카메라는 이 모습을 잡기에 분주했고 의원은 기세등등하게 자리에 앉았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이끄는 연립정부에서 연정 파트너로 참여한 녹색당의 요쉬카 피셔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관심·조롱의 대상서 당당한 주류로

녹색당은 1980년 1월 창당됐다. 이때부터 3년간 당시 독일에서는 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 Ⅱ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끓이지 않았다. 당시 녹색당은 반전, 반핵, 그리고 환경문제를 내세우는 시위정당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던 이 정당이 창당 3년 만인 1983년 사상 처음으로 의회 진입선인 유권자의 5% 지지를 얻어 의회에 진출했다. 이날 의사당에 처음 진출한 피셔는 의상부터 관심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이제 창당 41년이 된 녹색당. 중년의 위기도 없이 세력을 불려왔다. 9월 26일 총선에서 녹색당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조롱당하던 정당이 이제 당당히 주류로 자리 잡게 됐다. 그만큼 사회가 급변했고 녹색당이 내세운 의제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40세 여성 공동대표 베르보크 후보로

지난달 19일 녹색당은 아날레나 베르보크(Annalena Baerbock)를 총리 후보로 선출했다. 이전까지 총선에서 보통 10% 안팎의 지지를 얻어 왔던 녹색당은 현실을 알기에 총리 후보를 지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총리 후보를 내세웠다. 그만큼 이번에는 녹색당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원래 녹색당의 또 다른 공동 대표인 로버트 하벡(Robert Habeck)이 총리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을 일부에서는 점쳤지만 예상과 달리 40세의 여성 공동 대표가 선출됐다. 40세의 베르보크는 재선의원이다.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변화에 방점을 둔 녹색당은 젊은 여성 리더를 총리 후보에 선출했다.

반대로 지난 16년간 집권해온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CDU)은 고전을 면치 못해 왔다. 코로나19 대응에서 실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발발 초기에 독일은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해 환자와 사망자 수에서 낮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올 초부터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급증해 석 달 넘게 봉쇄에 들어갔다. 경제도 좋지 않고 봉쇄에 지쳤던 시민들은 코로나19 접종도 너무 느리자 불만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3월 말 2개 주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크게 패했다. 여기에다 일부 집권당 의원들이 마스크 구매 업자에게 편의를 봐준 대가로 거액의 수수료를 받은 스캔들이 보도돼 집권당의 지지도는 크게 추락했다.

▲독일 녹색당의 총리 후보로 선출된 아날레나 베르보크 공동 대표가 지난달 26일 베를린에서 당 지도부와 면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FP연합뉴스

메르켈 후임 라쉐트, 별 주목 못 받아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의 후임자로 당수가 된 아민 라쉐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는 60세이고 산업지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지사로 메르켈의 정책을 계승한다는 것 이외에 주목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독일 최대의 주 바에에른의 지역정당 기사당(CSU) 당수 마르쿠스 죄더와 총리 후보 자리를 놓고 한 달 넘게 지리한 설전을 벌여왔다. CSU는 지역정당으로 의석수가 부족해 기민당과 같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해 연방하원에서 활동한다. 죄더 당수는 코로나 위기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왔고 40대 젊은 주지사로 유권자의 지지가 높았다. 많은 갈등 속에서 지난달 20일 라쉐트가 겨우 기민당·기사당의 총리 후보가 됐다. 하지만 팬데믹이 심각한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커지는데 후보 자리를 놓고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게 시민들의 비호감만 높였을 뿐이다. 아직까지 기민당·기사당은 공약조차 발표하지 못했다.

컨벤션 효과 등에 힘입어 지난달 마지막 주 정당 지지도에서 녹색당이 28%로 1위를 차지했다. 기민당·기사당은 22%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기민당은 보통 오차 범위 안에서 2위인 녹색당보다 정당 지지도에서 앞섰지만 처음으로 지지도가 역전됐다. 기민당·기사당과 대연정을 구성 중인 사민당의 지지도는 3위를 차지했다(13%).

기업 CEO들도 차기 총리 녹색당 꼽아

이런 정당 지지도 변화는 재계에서도 감지된다. 주간 경제지 ‘비르츠사프츠보케(Wirtschaftswoche)’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고경영자들은 적합한 총리 후보로 녹색당의 베르보크를 으뜸으로 쳤다. 녹색당이 법인세 인상과 정부 계획보다 8년 빠르게 2030년 석탄 화력 발전소 폐쇄를 공약했음에도. 그만큼 법인세 인상과 기후위기 대응에 독일 기업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녹색당도 초기의 시위정당에서 점차 주 정부와 연방정부에서 연정에 참여하면서 현실에 더 적합한 공약을 제시했다. 녹색당이 중도 성향을 강화했고 이 때문에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도 점차 녹색당을 지지하게 됐다.

녹색당은 독일의 주요 정당 가운데 기후위기에 가장 적극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난민 등 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왔다. 이번 공약집을 보면 5억 유로(6500억 원)를 디지털과 인프라, 혁신과 기후 위기에 투자할 계획이다. 유럽통합을 적극 지지하며 인권을 중시하기에 대중국, 대러시아 강경정책을 내세운다.

9월 총선에서 녹색당이 의석에서 2위를 차지하더라도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독일의 선거제도와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게임의 규칙 때문이다. 독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하원의 경우 소선거구제로 지역구 의원 한 명과 함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혼합해 두 표를 행사한다. 이런 제도 덕분에 독일에서 한 정당이 과반을 획득하기는 매우 어렵고 보통 최대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5% 진입선을 넘은 소수정당과 연정을 구성해 4년간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왔다. 선거 후 평균 두 달 정도의 연정 협상이 있고 연정 합의문에는 주요 정책에 대한 합의가 제시된다. 연정이 독일 정치의 게임의 규칙이기에 항상 대화와 타협이 독일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왔다.

연정 협상서도 선택권 넓은 녹색당

기민당·기사당이 최대 의석을 얻는다 하더라도 녹색당을 반드시 포함해야 과반이 돼 연정 구성이 가능하다. 즉 기민당·기사당은 녹색당에 목매는 상황이다. 반면에 녹색당은 사민당, 그리고 친기업적인 자유민주당(자민당)과 교통 신호등 연정(각 정당의 색이 신호등과 같음), 혹은 사민당 그리고 좌파연합을 합쳐 적녹 연정 구성도 가능하다. 그만큼 연정 구성 선택권이 녹색당에게 훨씬 크다.

유럽통합을 주도해온 독일의 9월 총선은 유럽과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내년 4월에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통합을 주도해온 두 나라의 지도부 구성이나 변화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대규모 인프라 투자책을 시행 중이고 여기에 재생에너지 투자와 같은 기후위기 대책이 포함된다. 유럽이 기후위기 대응책을 주도하는 만큼 이곳의 정권 교체와 정책 변화를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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