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헌 자본시장부 차장
연초 코스피 지수가 증시 사상 최초로 3000선을 돌파하고 거침없이 3200선을 넘나들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횡보양상을 보이다가 뒷걸음질치기 시작해 3000선마저 무너지는 등 약세를 보이자 증시의 큰손으로 떠오른 ‘동학개미’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볼멘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투자자들의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이하 한투연)는 4일 전북혁신도시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연금은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한투연은 “지긋지긋한 박스피를 벗어나 13년 만에 봄이 찾아온 국내 주식시장에 차디찬 얼음물을 끼얹는 연속 매도 행태는 동학 개미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라며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원칙인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데 최근의 매도 폭탄은 공공성을 위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도 투자자들이 이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는 등 개인 투자자들이 연달아 불만을 제기하자 표심을 놓칠 수 없는 국회의원들도 자료를 내고 국민연금이 매도세를 이어가는 추세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연금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매도세를 이어가는 것은 기금운용을 통한 수익률과 안정성 지표 충족을 위해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증시가 랠리를 이어가며 국내 주식 비중이 높아지자 이를 줄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앞으로 당분간 매물 폭탄을 계속 쏟아낼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국민연금에 의하면 올해 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운용자산의 16.8%인데 지난해 말 기준 비중은 21.2%, 금액으로는 176조7000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올해 목표 비중까지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선 앞으로 24조 원가량을 더 팔아야 한다.
하지만 투자자들과 국회까지 나서서 비난의 목소리를 낼 경우 정치권과 국민연금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투자 기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원칙 하나는 국민연금은 증시 부양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는 국민들이 낸 돈을 잘 운용해 향후 연금이 문제없이 지급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 외환위기나 지난해 3월처럼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폭락해 국가 경제시스템이 위험에 처할 경우 국민연금도 시장 참여자로서 구원투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넘나드는 지금은 위기상황으로 보기 힘들다. 투자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국민들의 노후 자금을 담보로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최근의 조정장세를 국민연금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증시 전문가들은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증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고 외국인의 매도를 조정의 이유로 꼽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국민 연금은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의 운용자금은 수많은 국민의 피땀 흘린 돈으로,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갈 우리 후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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