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 조치를 수용해 온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 중대범죄에 대응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취지다.
윤 총장은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며 여권의 중수청 입법 강행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정신의 파괴”라며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총장은 인터뷰에서 과거 자신이 담당한 국정농단 사건과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등을 거론하며 “수사, 기소, 재판을 모두 따로 진행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대범죄가 나날이 지능화ㆍ조직화ㆍ대형화하는 가운데 수사와 기소를 별개로 진행하면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검찰 관계자는 “중대범죄를 직접 수사할 수 없으면 소추가 어렵고 재판에서도 무죄가 속출할 것”이라며 “수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재판을 위한 준비 활동으로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기득권 세력의 중대범죄, 권력형 비리와 대규모 금융사건은 검사가 직접 수사하고 소추해 최종심 공소유지까지 담당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검사가 직접 수사하고 공소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검사가 경찰보다 훌륭하거나 우월하다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재판에서 공방을 벌여야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수사가 필요한지 파악이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험이 없으면 증거법적으로 수사가 필요 없거나 유죄 판결을 받기 어려운 사건도 여러 수사기관이 마구잡이로 수사하게 된다”며 “이런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덧붙였다.
여당은 중수청 추진의 해외 사례로 영국의 중대비리수사청(SFO)을 거론했다. 이에 대해 윤 총장은 “SFO는 검사가 공소 유지만 하는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수사와 기소를 융합한 것”이라며 “우리 검찰의 반부패 수사 인력보다 상근 인력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도 사법 선진국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사법 선진국의 법제를 보면 중대범죄에 있어서 검찰의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며 “더 나아가 중대범죄의 경우 수사와 기소를 융합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이어 “방대한 사건의 경우 수사와 공소유지를 따로 진행하면 재판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가 없다”며 “아주 복잡한 사건을 기록만 보고 재판에 나서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 오히려 공판중심주의에 반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윤 총장은 수사ㆍ기소 분리에 찬성한 바 없다”며 “경찰에 대한 철저한 수사지휘권을 전제로 전문수사청과 전문검찰청은 수사와 기소가 융합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중수청 설치와 관련해 검찰개혁이 아닌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