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돈 줘도 애 안 낳는다

입력 2021-0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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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최근 신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남은 1년 임기에 어떤 정책이 필요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진단하는 기사를 썼다. 전문가 중에서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과 통화를 했을 때 최 소장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쓸데없이 수십조 원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경제정책을 주로 다루다 보니 이 얘기는 기사에서 뺐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주제로 칼럼을 쓰기로 한 이유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저출산 예산을 합치면 지난해 기준 45조695억 원이라고 한다. 2017년 27조8800억 원에서 크게 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수십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대책은 무용지물이었다. 지난해 드디어 국내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자연 인구 감소가 이뤄졌다. 사상 처음이다. 이러다가는 외국인이 추가 유입 없이는 국가가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정부 대책을 보면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를 꾸리고 이달 6일까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25번의 회의를 열었다. 그동안 3차에 걸친 재난지원금이 지급됐고 다양한 지원대책이 결정됐다. 그 결과 'K방역'이라는 브랜드도 만들어졌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코로나19 방역에 선방했다는 찬사를 듣고 있다.

사실 저출산 문제는 당장 저출산 비상경제중대본을 꾸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마 차기 정부 인수위원회에서는 저출산 대책을 주요 국정과제로 지정해 다양한 정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저출산 대책으로는 저출산을 막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인 것 같다.

저출산 대책을 보면 자꾸 아동수당(30만 원) 같은 현금을 지급한다. 돈을 주면 애를 낳겠지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정책이다. 최용식 소장은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이 사회심리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심리학은 사회적 행동에 관한 여러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예를 들면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다리에 자살예방문구를 써놨더니 오히려 자살이 더 늘어났다.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막연히 자살을 막기 위해 예산을 투입해 자살예방문구를 만들었지만, 역효과가 난 셈이다. 반대로 공중화장실 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었더니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이 크게 줄었다. 사회심리학을 정책에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저출산을 막는다고 출산대책을 만드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최근 한 지자체가 첫째를 출산하면 1억 원을 대출해주고 셋째를 출산하면 그 1억 원의 빚을 탕감해준다고 해 화제가 됐는데 아마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단지 정책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의회를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또 코로나19를 대처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혀를 찼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복지국가의 대표인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추구했다가 많은 사망자를 남기고 실패를 선언하기도 했다. 우리가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믿은 국가들의 모습이다. 공무원 보고서에는 꼭 해외사례를 넣는다. 앞으로는 이 보고서에 정책 현장의 목소리를 넣으면 어떨까. 공무원들이 더 발품을 팔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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