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원 IT중소기업부 기자
내용은 ‘웃프(웃기고도 슬프)’다. 가상의 아버지는 번호를 매겨가며 살뜰히 체크한다. “투자자는 많지만 네게 투자할 돈은 없으니 착각 말아라”라는 일침이 압권이다. 투자자들에 대한 냉소와 정부 정책자금이 ‘하늘의 별따기’란 지적도 담겨 있다.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 외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다. “우린 인감증명서 내기 위해 창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사무실은 등기소 주변에 구하고, 정부가 모태펀드를 풀지만 너를 위한게 아니니 투자 없이도 일 년쯤은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등 ‘꿀팁’이 들어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 글에는 ‘공감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정말 웃픈 건 아버지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창업자로서의 조건이란 점이다. 상상 속 아버지는 첫 번째 질문부터 나이가 만 40세가 넘지는 않았는지, 카이XX나 S대 졸업장은 있는지, 신용점수는 확인해 봤는지 묻는다. 카카X나 네이X 등 굴지의 IT 대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은 있느냔 물음도 이어진다.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창업가의 조건이 나이와 학벌, 그리고 대기업 입사경력이란 점은 씁쓸하다. 이런 조건이 없으면 “너의 팀은 형편없다”는 코멘트가 글 말미에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당신과 팀이 스스로의 사업성과 혁신성을 증명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라는 뜻이겠지만 이 조건만 맞추면 고평가도 가능하단 의미로도 들린다.
이미 업계를 한 바퀴 돌았던 해묵은 글을 연초부터 다시 꺼내는 이유는 올해는 이 계명이 그냥 웃긴 글에 머물길 바라서다. 스타트업 시장이 성숙했고, 창업가들의 기업가 정신이 선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만큼 아마 이 글은 우스운 글에만 머물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았어도,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성공한 창업가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