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매일 아침 "안전"…구호만으론 부족합니다

입력 2020-12-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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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처벌 정도는 이미 주요 국가보다 강력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정책적 효과는 낮고 기업 활동만 위축시키는 과잉규제입니다.”

경제계의 외침이 무색하게 한국은 강력한 처벌에도 23년째 ‘산업재해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다녀올게”라는 인사로 집을 나선 뒤 산재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2000명이 넘는다. 올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상황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국회가 다시 ‘처벌’을 중심으로 한 중대재해처벌법을 가지고 나왔다. 권리보단 의무, 자유보단 책임에 방점을 둔 유인책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면 사망 또는 상해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법인이 모두 처벌 대상에 오른다.

이러한 ‘처벌의 강화가 곧 예방’이라는 공식은 곧바로 사람의 본성을 논하는 ‘성선설’과 ‘성악설’ 만큼이나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강력한 처벌로 산재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노동계 입장과 처벌을 강화한다고 산재가 줄어드는 효과는 없고 경영 활동만 힘들어질 것이라는 기업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산업 안전을 위한 활동을 처벌로 유인할 것인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이를 실행할지 산재를 줄이기 위한 방법론은 다르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모두 산재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의 통과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산재 예방을 위한 안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안전을 ‘비용’으로 치부하는 문화부터 사라져야 한다. 기업이 돌아가기 위해선 자본과 기술, 노동 등 다양한 생산 요소가 필요하다. 자본 확충과 선진 기술력 확보, 능력 있는 노동 인력 영입에는 많은 노력과 투자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인적 자본을 제대로 투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안전을 위한 투자는 기업에 있어서 큰 부분이 아니다. 그동안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던 한 기업이 “아침마다 안전 구호를 외쳤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체계적인 안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걸 입증한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교육 및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현장별 안전 관리 규정 작성 의무화 등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산업 안전은 기업의 의무이자, 노동자의 권리다. 최근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의 강화로 기업들의 안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작은 변화가 모여 산재 공화국이란 부끄러운 이름을 곧 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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