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오토 인사이드] 자동차 컬러…돈을 이야기하다

입력 2020-11-23 16:00수정 2020-11-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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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줄이기 위해 페인트 벗겨내던 고성능 車, 도색 공정 투입 인원과 설비가 생산량 결정해

국제유가가 하늘을 찔렀던 2000년대 중반, 항공사들은 기름값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항공유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아이디어를 쥐어짜 내느라 밤잠도 줄였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쥐어짜던 항공사들은 이른바 ‘누드 항공기’를 운용하기로 했다. 항공기 전체의 페인트를 벗어내 동체 무게를 줄이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2006년 비용 절감 차원에서 화물기의 동체 페인트를 모조리 벗겨낸 화물기를 선보였다.

(AP연합뉴스 )

◇항공기 동체 페인트 벗겨내자 연간 약 2억 원 절감

보잉 747-400을 바탕으로 동체 도색을 모두 벗겨낸 누드 항공기 1호는 은색 철판을 고스란히 드러내 눈이 부셨다. 회사 로고와 식별번호만 남긴 채 페인트를 벗겨내자 항공기 무게가 200㎏ 감소했다.

당시 캐세이퍼시픽은 “1대당 연간 150만 홍콩 달러(약 1억9000만 원)가 절감된다”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1960년대 치열한 고성능 싸움을 벌였던 차 제조사들은 다양한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요즘 유행하는 자동차의 컬러 역시 모터스포츠에서 얻어온 경험이 바탕이다.

1960년대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차들은 앞서 언급한 캐세이퍼시픽 항공기처럼 차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페인트를 모조리 벗겨냈다.

그래서 경주용 고성능 차 대부분은 고스란히 철판을 드러낸, 무광 형태였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1960년대 머슬카 또는 스포츠카들이 모조리 무광 컬러인 것도 이런 이유다.

▲1960년대 모터스포츠에 나선 경주용 머신은 차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페인트를 모조리 벗겨냈다. 은색 차체 철판이 드러나면서 '날으는 은색 화살'이라는 애칭도 이때 붙었다. (사진제공=다임러AG 미디어)

◇차 무게 덜어내기 위해 페인트 벗겨낸 경주용 차

자동차 도색은 여러 페인트를 반복해서 입힌다. 일단 철판 위에 페인트가 잘 묻어나도록 기초 칠을 한다. 이른바 ‘프라이머’다.

이후 고객이 주문한 컬러를 덧칠한다. 도색을 마치면 그 위에 반짝반짝 광을 내는 칠감을 최종적으로 덧칠한다. 이게 ‘클리어 코팅’이다.

오래된 자동차의 광택이 사라지는 것은 이 ‘클리어 코팅제’가 벗겨진 것이다. 나아가 외부 마찰로 도장 면에 불규칙한 손상이 생기면 빛의 난반사 탓에 광택이 줄어든다.

고성능 경주용 자동차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냈다면 요즘 차들은 고성능을 상징하기 위해 오히려 페인트를 덧씌운다.

도색 과정에서 반짝이는 클리어 코트를 입히는 대신, 무광 색채가 드러날 수 있도록 특수 칠을 더한다.

그 옛날 고성능 자동차가 광택이 없는 철판 색상이었다면 요즘 고성능 차들은 그 옛날 고성능 차의 아이콘(무광 컬러)을 추종하며 새로운 무광 도색을 입히고 있는 셈이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이런 무광 색채를 '매트 피니쉬(Mat Finished)'라고 부른다.

▲최근 일반 양산차에도 무광 컬러가 인기다. 오래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고성능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부분변경된 제네시스 G70의 모습. 5가지 신규 컬러 가운데 3가지가 무광이다. (사진제공=제네시스)

◇고성능 양산차 중심으로 무광 컬러 인기
국산차도 점진적으로 이런 무광 색채가 늘어나고 있다. 광택이 없는 파스텔 색조의 컬러는 반짝이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아가 반짝거리는 광택이 사라질 우려도 없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지닌다.

국내에서는 2010년대 초 현대차 1세대 벨로스터가 ‘건 메탈 그레이’ 색상을 활용하면서 인기가 시작했다. 이후 고성능을 상징하는 여러 차종이 무광 컬러를 하나둘 앞세우기 시작했다.

실제로 제네시스 스포츠세단 G70은 부분변경 모델을 선보이면서 5가지 컬러 가운데 3가지를 무광으로 선보였다.

이보다 앞서 선보인 제네시스 G80 역시 무광 컬러를 여럿 선보이며 뜨거운 심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런 자동차 색상은 때때로 비용으로 둔갑한다.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국산 소형 SUV들은 강렬한 인상을 더 하기 위해 이른바 ‘투-톤 컬러 루프’를 선보이고 있다. 차 전체가 한 가지 색상이라면 지붕만 흰색 또는 검정으로 차이를 두는 형태다.

국내에서는 현대차 코나와 기아차 쏘울, 쌍용차 티볼리 등이 이런 컬러를 앞세워 젊은 층에 인기를 누렸다.

▲쌍용차 티볼리는 젊은층을 겨냥해 독특하고 다양한 컬러를 선보여 왔다. 출시 초기 큰 인기를 누렸던 '투-톤 컬러 루프'는 차 색상과 별개로 지붕 색을 고를 수 있었다. 다만 컬러 필름을 붙인다는 지적에 잇따르자 이를 도색으로 변경했다. (사진제공=쌍용차)

◇도색 공정 설비와 인원 따라 1시간당 생산량 달라져

그러나 제조사 입장에서 이런 ‘투-톤 컬러 루프’는 애물단지다. 생산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컬러 루프를 주문받았다면 자동차 공장에서 도색을 마친 차체를 라인에서 꺼내야 한다. 지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도색이 묻지 않도록 '래핑(Wrapping)'을 두르고 지붕만 또다시 색칠해야 한다.

쌍용차 티볼리는 출시 초기 이런 공정을 건너뛰기로 했다. 도색을 마친 차체 지붕에 하얀색 또는 검은색 유광 색채 필름을 붙였다. 번거로운 과정 없이 작업자 4명이면 뚝딱 새로운 지붕 컬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차 지붕에 컬러 필름 용지를 붙이다 보니 이를 폄훼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 차를 세우면 일부 불량 시트지는 벗겨지거나 굴곡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쌍용차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트지 대신 실제 색칠을 하는 방식으로 생산계획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동차에 컬러는 돈이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내기도 하지만 고성능을 상징하면서 독특한 색상을 입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도색 과정은 차의 생산량을 결정하기도 한다. 기아차 광주 공장이 1시간에 50여 대의 스포티지를 생산한다. 반면 쌍용차 평택공장은 1시간에 25대 안팎이다. 차 색깔을 입히는 도료 공정에 얼마나 많은 설비와 인원이 투입되느냐에 따라 1시간당 생산량 차이가 확연히 달라지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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