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킹키부츠' 이석훈 "무대 위에서 웃기고 싶지 않아요"

입력 2020-10-12 13:43수정 2020-10-1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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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찰리 역을 맡은 이석훈. (사진제공=CJ ENM)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연기할 수 있어요. 더 재밌게 할 수 있고 더 바보처럼 징징거릴 수 있죠. 하지만 그건 찰리가 아니잖아요."

2018년 뮤지컬 '킹키부츠'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했던 가수 겸 배우 이석훈이 같은 다시 '킹키부츠'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미 한 번 해본 작품, 역할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 찰리를 표현하면 할수록 그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늘 완벽한 무대를 추구하는 그에게 찰리를 표현하는 매순간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최근 서울 강남구 인근 한 카페에서 이석훈과 만났다. 이제 그에게 뮤지컬배우라는 타이틀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석훈은 지난 3년간 '킹키부츠' 이후 뮤지컬 '광화문연가', '웃는 남자' 등을 통해 연기력과 가창력을 입증했다. 굉장히 빠른 성장을 보인다고 말하자 "성격이 급해서 빨리 알아내고 싶어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2018년에 처음 뮤지컬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뮤지컬이 이런 거구나'라는 것도 그때 다 알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시 한번 하게 되면서 대본과 악보 보며 연습에 들어가는데 내가 더 끄집어내지 못한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됐죠. 제가 하는 것보다 보이는 찰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킹키부츠'는 폐업 위기에 처한 구두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드랙퀸(여장남자) 롤라를 만나 80㎝ 길이의 '킹키부츠'를 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킹키부츠'에선 '이석훈'이 보이지 않는다. 찰리로 활약하고 있는 그가 보일 뿐이다. '내가 찰리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니 작품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됐다.

"너무 튀면 안 되고, 너무 안 튀어도 안 돼요. 적정선을 유지한다는 게 정말 힘들어요. 한참 화를 낸 뒤 솔로곡 '소울 오브 어 맨'(Soul of a man)을 불러야 할 때도 개연성이 있어야 돼요. 1막에 찰리가 어떤 성격인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주지 않으면, 2막이 설명되지 않아요. 꾹꾹 참다가 폭발해서는 롤라에게 안 되는 말들을 퍼붓는 찰리는 절대 이성적이지 않아요. 그런 것까지 다 생각해야만 해요."

이석훈은 찰리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약혼녀가 떠나고, 구두공장이 망할 위기에 처하면서 이성을 잃게 된 찰리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연출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대기실을 같이 쓰고 있는 배우 고창석, 심재현에게도 '형, 이거 맞아요?'라고 되물었다. 이석훈은 "제가 생각했던 찰리와 연출님이 생각한 찰리는 반대였다"며 "그 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차오르는 눈물은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찰리 역의 이석훈과 롤라 역의 최재림의 모습. (사진제공=CJ ENM)

앞선 공연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해야 할 대사를 잊었던 그는 한동안 우황청심환을 먹으며 무대에 오른 적도 있었다. 이석훈은 "실수를 한 후 굉장히 많이 힘들었다"며 "제 안에선 제가 미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롤라 역을 맡은 박은태가 '약으로 의지하면 안 된다'며 그를 달랬고, 그의 아내도 '틀려도 괜찮고 안 틀려도 괜찮다'며 다독였다.

"별생각을 다 하면서 무대에 올라갔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괜찮아진 건진 모르겠어요. 은태 형이 '너 고작 3년 하지 않느냐'며 본인도 '지킬 앤 하이드' 할 때 '나나나나나나'로 한 적이 있대요. 제가 다 소름이 돋더라고요. 힘이 났어요."(웃음)

작품의 특성상 드랙퀸 롤라에게 포커스가 쏠린다. 이석훈도 롤라 역에 눈길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킹키부츠'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석훈은 "롤라는 잘한다는 것만으론 할 수 없는, 짬이 없는 상태에선 하기 힘든 캐릭터"라며 "쉽게 덤빌 순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 걸 스스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찾아준 관객을 볼 때도 몇 번씩 울컥한다. 책임감을 또다시 되새기는 중이다.

"평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 자신에게 엄격하기 때문에 저를 만족시키고 싶은 거죠. 300회도, 299회도 정말 만족했어요. 잘 마친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아요. 집에 가서 야식도 엄청 먹었어요. 11월 1일이면 폐막이네요. 그떈 찰리를 해낸 이석훈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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