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날의 칼' 전월세 전환율 인하…계약 갱신 거부 손해배상 부담 준다

입력 2020-08-19 15:25수정 2020-08-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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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부담 줄지만 2년뒤 세입자 내쫓기도 쉬워져… '땜질' 처방 비판 피하기 힘들어

정부가 전세 주택을 고액 월세로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해 전ㆍ월세 전환율 인하 카드를 꺼냈다. 전ㆍ월세 전환 부담은 줄어들겠지만 이번엔 계약 갱신 청구권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제3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현행 4%인 월(月) 차임 전환율(전ㆍ월세 전환율)을 2.5%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ㆍ월세 전환율은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이자율이다. 전세 전환율이 낮아지면 전셋집을 월세로 돌릴 때 받을 수 있는 임대료가 줄어든다. 전·월세 전환율은 주택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으로 규정하는 만큼 국회 입법 없이 국무회의 의결만으로도 바꿀 수 있다.

정부가 전ㆍ월세 전환율을 낮춘 것은 지난달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전후해 주택 임대차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계약 갱신 청구권(전세 보장 기간 2년에 추가로 2년 동안 계약 갱신을 보장하는 제도)과 전ㆍ월세 상한제(계약 갱신 시 보증금ㆍ임대료를 5% 넘게 증액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집주인들 사이엔 전세를 월세로 돌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일었다. 전ㆍ월세 전환율을 낮추면 월세 상한이 줄어드는 만큼 이 같은 흐름을 차단할 수 있다.

문제는 계약 갱신 청구권제와 전ㆍ월세 전환율 하향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는 점이다. 주택 임대차보호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집주인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부하면 △3개월 치 환산 월세나 △계약 갱신 거부 후 새로 체결한 임대차 계약과 기존 계약 간 2년 치 환산 월세 차이 중 큰 것을 기존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액으로 지급하도록 한다. 이때 환산 월세, 즉 보증금을 반영한 월세 부담을 계산할 때 쓰이는 게 전ㆍ월세 전환율이다.

전·월세 상한률이 4%에서 2.5%로 낮아지면 이를 적용해 계산한 환산 월세도 37.5% 줄어든다. 계약 갱신 거부에 따른 손해배상 부담도 그만큼 작아진다. 다음 달 2년 계약이 만료되는 전셋집을 예로 들면 2018년 9월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4억3000만 원대였다. 이를 석 달 치 환산 월세로 전환하면 전ㆍ월세 전환율이 4%였을 때는 약 430만 원이지만 전환율이 2.5%일 때는 270만 원으로 160만 원 줄어든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일대 부동산업소 모습. 2020.5.10 (연합뉴스)

이 같은 점 때문에 자칫 계약 갱신권제가 허울만 남을 수 있다. 새로운 세입자에게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더 높여 받아 손해배상을 댈 수 있는 집주인이라면 손해배상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 계약 갱신 청구권, 전ㆍ월세 상한제 도입 전후로 서울 전셋값이 수천만 원 이상 오른 상태에선 손해배상금이 새 세입자에게 전가될 공산이 더 커졌다. 더구나 세입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법적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배상금 규모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부담도 남는다.

손해배상 규정을 강화하면 충돌 지점이 줄어들지만 이 경우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손해배상 규정은 법률로 규정된 사항이기 때문에 이를 개정하려면 국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임대차 보호법이 개정된 지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한다면 '땜질 입법'이란 비판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의 전ㆍ월세 전환율 하향 추진에 대해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시그널을 던지는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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