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몬드’ 작가 손원평의 감독 데뷔작…“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침입자’로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가족의 위기를 고려하게 되고, 가족 안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거죠. 정답은 내 주변 사람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 번이라도 더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배우 김무열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 ‘침입자’로 돌아왔다. 25년 전 실종됐던 여동생 유진(송지효 분)이 나타난 이후 가족들이 이상하게 변해가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오빠 서진(김무열 분)이 유진의 정체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베스트셀러 소설 ‘아몬드’를 쓴 작가 손원평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김무열을 만났다. ‘침입자’는 여러모로 김무열에게 도전작이다. ‘정직한 후보’로 코믹한 역할에 도전했던 그가 이번엔 어릴 때 트라우마로 공황장애 발작이 있는 캐릭터로 관객을 만난다. 유진이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변해가는 환경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서진을 소화하기까지 상당한 고민이 필요했다.
“영화의 90% 정도에 제가 나와요.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고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압박을 받는 사람이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어요. 저절로 ‘맘고생 다이어트’도 됐어요. 체중이 20kg이나 빠졌으니까요.”
‘아빠 김무열’도 관객, 자신에게 처음이다. 김무열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도움을 준 인물은 따로 있었다.
“상대 배우 덕분이죠. 딸 역할 맡은 민아가 너무 사랑스러웠거든요. 작품 자체가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를 주는 이야기의 톤을 갖고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민아가 굉장히 밝았어요. 감정적, 체력적 소비가 있을 법한데 ‘컷’ 이후 금방 일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주변에서 자신의 아이를 보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날 것을 생각하면 걱정된다고들 말했어요. 이해하지 못했는데, 민아를 보면서 그 마음이 뭔지 알게 됐죠.”
김무열은 영화 ‘기억의 밤’에서 서늘한 역할을 소화한 이력이 있다. 이에 그의 이름 앞엔 ‘스릴러 장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노하우라뇨. 하하. 이번에도 어려웠어요. 유진을 의심하던 관객이 어느 순간 서진을 의심하게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도 부자연스러우면 안 되기 때문에 감독님과 정말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서진이 최면에 걸리거나 최면에서 깨거나, 약에 취하거나 약에서 깨거나, 반복 혹은 중복되는 상황도 연기적으로 어떻게 완화할까 고민했어요. 서진이 심정적으로 지친 캐릭터라 제가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달고 살까 봐 감독님이 많이 걱정해주셨죠. 그래서 촬영장에서 평소보다 더 과장해 저의 밝은 모습을 보여드렸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저보고 ‘비글’이래요.”(웃음)
위기에 놓인 딸을 부르며 손으로 창문을 세게 치는 장면을 소화하던 중 손가락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김무열은 ‘비글’로 비치는 걸 택했다. 자신에게 쌓인 스트레스는 촬영장 한편에 제작진이 설치해준 농구대에서 농구시합을 하는 걸로 풀었다. 여기에 상대 배우 송지효의 배려는 김무열에게 힘이 됐다.
“지효 누나는 상대가 연기하는 데 불편함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사람이에요. 친하지 않았을 때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스스로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책하는 모습도 지효 누나의 성격이에요. 털털하고 덤덤해 보여도 속으로 참거나 배려하고 눈치 보는 스타일인 거죠. 배우로선 최고였어요. 슛이 들어가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거든요. 제가 목 조를 때 이마에 ‘Y자’ 모양으로 힘줄 서는 것 보셨죠?”
이번 영화가 입봉작인 감독 손원평과 손을 잡게 된 이유도 궁금했다. “전에 봤던 스릴러와 다른 느낌을 받았어요. 중반 정도에 유진이 범인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제가 초반에 세웠던 확고한 생각이 무너지더라고요. 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에 흥미가 갔죠. 특히 히스테릭한 인물과 분위기를 어떻게 연출할지는 ‘아몬드’를 읽고 상상해봤죠.”
‘침입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일정이 밀리는 등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첫 개봉일은 3월 12일이었지만, 5월 21일 그리고 6월 4일로 변경됐다. 150만 명이란 손익분기점이 어느 때보다 높게 느끼지는 시점이다.
“‘정직한 후보’를 하면서 숫자 너머를 보게 됐어요. 한 분 한 분의 정성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만 지금은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인 시기예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도 관객이 극장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풀거나 그동안 끊었던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 해소를 적셔드릴 수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해요. 다만 단절된 사회 분위기를 녹일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는 나와야 하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모두가 노력해야겠죠.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해 버티고 싸우다 보면 언젠가 이길 수 있을 겁니다.”
2017년 뮤지컬 ‘쓰릴 미’ 이후 김무열을 공연계에서 보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쉬워하는 팬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항상 마음은 가지고 있는데 실천을 옮기지 못하고 있어요. 무대가 제일 배우가 뛰어놀기 좋은 공간이에요. 극장 안에서 극을 진행하고 관객들이 보고 만들어지는 그 시간과 공간만이 주는 짜릿함이 있어서, 그걸 느껴본 배우는 절대 포기 못 하고 놓지 못해요. 계속하고 싶은데 마음은 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만큼 안주하지 않을게요. 제가 가진 게 없어지는 게 가장 두려워요. 그게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하고 배우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업’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