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이날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의 제재 강화로 인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테크놀로지의 주문 공백을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늘려 만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싸움에서 희생양 처지가 되자 살길 모색에 나선 것이다. 리우 회장은 “이미 화웨이와의 거래 단절로 발생하는 제품을 할당해 달라는 요구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생산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TSMC는 애초에 세웠던 올해 목표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주주총회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리우 회장은 “올해 설비투자와 매출 목표를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서 매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 설비투자는 사상 최고치인 150억~160억 달러(약 17조9000억~19조1000억 원)를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TSMC는 미국 애플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업체로, 미국의 인텔, 한국의 삼성전자와 함께 업계 빅3로 통한다. 그러나 미·중 갈등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5월 미국 정부는 제3국 반도체 업체들도 미국산 제품을 사용할 경우 화웨이에 대한 수출을 금지하도록 하는 새 제재를 발표했다. TSMC는 미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내놓은 지 사흘 만에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거절했다. 화웨이가 5월까지 주문한 물량은 9월 중순까지 정상적으로 출하하지만, 이외 새로운 거래는 사실상 중단한 것이다.
화웨이는 TSMC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5%로, 두 번째로 큰 고객이다. 거래가 끊길 경우, TSMC에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TSMC는 미국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국가별 매출 비중을 보면 미국이 60%로 중국(20%)의 세 배다. 다만 중국의 비중은 지난 5년간 13%포인트나 늘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화웨이 매출을 늘린 결과다.
그러나 미국의 고강도 제재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TSMC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TSMC는 향후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를 투자해 건설 중인 공장을 거점으로 미국 수주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공장은 내년에 착공해 2024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미국 정부도 TSMC에 전투기 등 민감한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요청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다만 고민은 미국 내 생산 비용이 높아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와 보조금을 두고 협상 중이다.
리우 회장은 “TSMC만이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이 앞으로 미·중 사이에 끼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반도체 업계의 경우 미국과 중국이 모두 고객이어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