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ㆍ증거인멸 사유 없어…삼바 대표 두 차례 기각
4일 검찰이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조계는 "놀랍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검찰이 인권보호와 자체 개혁 방안으로 도입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시킨 것이라는 날선 비판이 나온다.
◇수사심의 신청 뒤 영장청구…"자체 절차 무시"
먼저 검찰의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시기적인 논란이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3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의혹 수사와 관련해 기소 여부를 외부전문가들이 판단해 달라며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는 2018년 검찰이 사법처리 중립성 강화 등 자체 개혁안의 일환으로 도입했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수사 계속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 △구속영장 청구 및 재청구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된 사건의 적정성·적법성 등을 심의한다.
수사심의위는 양창수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고 변호사, 교수, 언론인, 종교인, 시민단체 등 검찰 외부 전문가 250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방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에서 수사심의위 소집이 결정되면 위원장이 무작위 추첨을 통해 15명의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기소 여부 등을 심의하게 된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와 별개로 수사심의위 소집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지만 두 사안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모순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검찰은 1년 6개월여 동안 공들여온 이번 사건 수사의 동력을 잃게 된다. 반대로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수사심의위 심의는 무의미해진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수사팀에서 ‘기소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라며 “수사심의위는 기소·불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인데 회의 개최 여부를 비롯해 절차가 진행되기도 전에 수사팀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영장실질심사 혐의 소명이 관건…"추가 증거 없으면 기각"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법원은 사안이 중대하고 혐의가 소명됐다고 판단했을 때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지도 주요 판단 근거다. 검찰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 적시한 혐의를 고려하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보다는 혐의 입증이 관건이다. 법조계는 검찰이 핵심 혐의를 얼마나 소명하는지에 따라 영장전담 판사의 판단이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핵심 혐의에 대한 소명은 쉽지 않다. 그동안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삼성그룹 임원들은 대부분 증거인멸 우려가 적용됐다.
특히 검찰은 지난해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두 번째 영장 청구 때는 분식회계 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김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보다 혐의를 입증할 만한 추가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범죄 성립 여부가 불투명할 때는 법원이 기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한편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직후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의 안건 부의 여부 심의절차가 개시된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문가의 검토와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받아 보고자 소망하는 정당한 권리를 무력화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사심의위 절차를 통해 사건관계인의 억울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주고 위원들의 충분한 검토와 그 결정에 따라 처분했더라면 국민도 검찰의 결정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