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 장거리 연애하던 中 공대생, 실리콘밸리 신화가 되다

입력 2020-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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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손바닥 세상을 회의실로 만든 ‘ZOOM’ 에릭 위안 CEO 성공기

1980년대 후반 중국 산둥과학기술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던 남학생이 있었다. 그에게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다 보니 이 커플은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중국의 교통 인프라가 아주 열악해서 여자친구를 한 번 만나려면 기차를 타고 10시간 넘게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번 사람들로 꽉 찬 열차에 겨우 끼어가면서 그는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여자친구를 만날 방법은 없을까... 그녀와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처럼 통화를 할 수는 없을까...” 공상의 나날이 이어졌다.

결국 공대생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바로 ‘ZOOM(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 세계의 안방에서 애용되고 있는 바로 그 줌 말이다.

당시 그 공대생이 지금의 에릭 위안 줌 최고경영자(CEO)다. 세계 IT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동경하면서 영어도 못하고, 그래서 8번이나 미국행 비자를 퇴짜맞았던 그다. 그러나 현재 그는 아는 사람은 다 쓴다는 화상 회의 앱 ‘줌’의 CEO이고, 자산 규모 70억 달러, 2020년 포브스의 세계 부호 순위 293위에 이름을 올린, 그야말로 미·중 양국의 살아있는 성공 신화다.

▲에릭 위안 줌(ZOOM)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2019년 4월 18일(현지시간) 뉴욕 나스닥거래소에서 자사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욕/AP뉴시스
위안은 1970년 중국 산둥성 태안시에서 태어났다. 광산 기술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고철 재활용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걸 팔면 돈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건축 폐기물을 주우러 다니곤 했다.

1987년 산둥과학기술대에 입학해 응용수학을 전공하고, 중국광업대학에서 광산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그는 일본에서 4년간 일했다. 일본에 있을 당시인 1994년, 그는 우연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게이츠는 ‘정보의 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설명했는데, 위안은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세계 IT 산업의 수도’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일단 언어가 문제였다. 영어 실력이 안돼 미국행 비자를 8번이나 거부당했다. 그러다가 27세였던 1997년, 9번째 도전에 성공해 꿈에 그리던 실리콘밸리에 입성했다.

막상 실리콘밸리에 입성은 했지만, 영어 실력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엔지니어로서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영어가 서툴러서 어떤 기업도 그를 써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중국계 커플이 세운 ‘웹EX(WebEX)’라는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적어도 말은 통했으니까.

웹EX는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로, 직원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거기서 위안은 열심히 일해 일개 엔지니어에서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그러다가 그의 실리콘밸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7년 세계 최대 네트워킹 장비회사인 미국 시스코가 웹EX를 32억 달러(약 4조 원)에 인수한 것이다. 얼떨결에 위안은 시스코의 엔지니어 부문 부사장으로 들어가 800명 이상의 부하를 거느린 대기업 임원이 됐다.

그러나 위기는 또 찾아왔다. 4년 후 위안은 시스코 경영진과 정면 충돌한다. 위안은 4G와 클라우드 시대를 맞아 영상과 음성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하는 지금이야말로 화상 회의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시스코 경영진은 화상 회의에는 미래가 없다며 반대로 투자 규모를 축소하기로 한 것이다.

결국 위안은 41세이던 2011년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시스코를 나와 지금의 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후발 주자였던 그는 중국 내 젊은 엔지니어들을 불러모아 2012년 8월 줌의 초판을 세상에 내놨다. 당시는 스카이프와 구글 행아웃, 페이스타임 등 화상 통화 앱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시기여서 신시장 개척의 전국시대를 방불케 했다.

그런 와중에 줌이 취한 전략은 ‘무조건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초보자도 바로 쓸 수 있게 하고, 영상과 음성 질도 향상시켰다. 인터넷 환경이 아무리 나빠도 연결이 끊기지 않게도 했다.

그랬더니 서부의 명문인 스탠포드대학이 교육용 줌을 채용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해왔다. 이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 200개교 이상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줌 초판 출시 후 약 1년여가 지난 2013년 9월 개인 유저 300만 명, 기업 유저 4500사를 돌파했다.

이런 쾌조에도 위안은 안주하지 않았다. 2014년 그는 전략을 바꿨다. 버전을 업데이트해 개인 유저와 기업 유저 용도를 달리 하고, 기업 유저용 화상 회의로 특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같은 해 8월 기업용 화상 회의 인원을 25명에서 한 번에 1000명으로 늘렸는데, 갑자기 기업 유저가 3만 곳을 넘어선 것이다. 2015년에는 교육용으로도 특화해 기업 유저는 20만 곳을 돌파했다.

2016년 7월에는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완, 기업 유저는 45만 곳으로 늘어 그해 3분기에 처음으로 적자 신세에서 탈출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017년에 발표한 제4판에선 페이스북, 유튜브와도 공유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기업 유저는 70만 곳, 교육기관은 6900곳을 넘었다. 2018년에는 ‘줌 폰’을 발표했고, 그해 줌은 다국적 회계법인 언스트앤영이 선정하는 ‘사원이 가장 행복한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 4월 18일, 드디어 줌은 미국 나스닥거래소에 상장하며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되었다. 작년 말에는 하루 사용자가 1000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줌 주가 추이. 출처:FT
그리고 올해 2020년. 줌은 ‘코로나19’라는 인류 역사상 드문 미지의 바이러스 악재 속에서 일생일대의 도약을 하는 중이다. 전 세계 주식시장이 코로나18 때문에 쑥대밭이 된 2월, 대부분의 기업 주가가 곤두박질치며 맥을 못 췄지만, 줌은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폭등했다. 작년 12월 31일 종가가 68.04달러였던 줌의 주가는 올 4월 23일엔 사상 최고치인 169.09달러로 마감했다. 세계 사용자 수도 3월에 하루 2억 명을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개인 사생활 노출이 문제시되면서 4월 1일 위안은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3개월은 새로운 기능 개발을 중단하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발언에 한동안 떨어지던 줌의 주가는 다시 사상 최고치 행진을 계속했다. 21일 주가는 172.03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상승률이 거의 3배에 이른 셈이다.

위안은 현재 미국인이다. 영어는 아직도 서투르다. 발음이 문제다. 그에게 오늘의 줌을 있게 해준 20대 때 여자친구와 가정도 꾸렸다. 코로나 시대에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이 격해지는 와중에 차이니즈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을 모두 이룬 위안의 성공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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