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입장벽 과해”…금융위 “시장 정상화에 일정 부분 불가피”
고위험 상장지수상품(ETP, ETP+ETN)의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기본예탁금을 설정하기로 하면서 주식워런트증권(ELW)의 전철을 밝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거래 규모면에서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였던 국내 ELW시장이 2012년 예탁금 도입 이후 고사 상태에 빠졌듯 ETP 시장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ETFㆍETN 시장 건전화 방안’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에 새로 투자하려면 기본예탁금 1000만 원을 내야 한다. 충분한 사전지식 없이 추종 매매하는 투자자의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진입 장벽을 세운 것이다.
당국은 계좌만 개설하면 거래할 수 있는 점이 ETP 상품에 대한 투기 길목을 열여놨다고 진단했다. 실제 유가 급락 이후 반등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원유 관련 상품 시장에 대거 뛰어들었다. 원유 ETP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일평균 62억 원 수준에서 이달 2667억 원으로 3556% 폭증했다. 활동계좌수도 ETF가 올해 약 26만8000계좌에서 지난달 79만9000계좌로 증가했고, ETN도 2만8000계좌에서 23만8000계좌로 늘었다.
이에 당국은 예탁금을 설정하고 차입투자를 제한하는 등 신규 투자를 어렵게 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러한 대책이 ETP 시장의 성장세를 꺾을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잘 나가던 ELW 시장이 예탁금 도입으로 크게 위축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ELW는 특정 종목이나 지수를 정해진 시점에 특정 가격에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증권이다. 2005년 국내에 도입된 이후 국내 ELW 시장은 거래 규모가 한때 홍콩에 이어 세계 2위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2년 당국이 초단타 투자를 막기 위해 예탁금 1500만 원을 설정한 뒤 시장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2010년 40조 원 수준이던 월별 거래대금은 2012년 이후 20분의 1 수준인 2조 원대로 감소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으로 진입장벽이 다소 과하게 높아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과열을 단기간 안에 잠재우겠다는 당국의 의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레버리지 ETP는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영역임은 분명한데 상당한 수준의 규제가 적용되면서 과거 ELW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상당히 커졌다”고 지적했다.
당국도 이번 대책으로 인한 ETP 시장의 위축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시장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이번 방안으로 단기적인 시장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과도한 투기적 수요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불가피한 부분”이라며 “ETP 시장의 균형적 발전을 고려해서 이번 대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ETP 시장이 건전화하면 오히려 균형 있고 안정적인 자산관리 시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