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퍼펙트 스톰, 경제 리더십 미덥지 않다

입력 2020-03-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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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경제를 망가뜨릴 것으로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전염병 공포에 질린 시장이 추락하고, 무너지는 시장이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이다. 대공황의 암울한 그림자가 짙다.

금융시장은 패닉의 연속이다. 미국과 아시아, 유럽 증시가 꼬리를 물고 초토화하고 있다. 한 달 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30000을 넘보면서 거침없던 뉴욕증시가 3월 18일 20000선이 붕괴됐다. 2009년 이후 11년 만에 약세장으로 고꾸라졌다.

한국 증시는 모든 최악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3월 9일 코스피지수 2000이 무너졌다. 13일 1800, 17일 1700, 18일 1600이 깨졌다. 19일 역대 가장 큰 폭인 133.56포인트(8.39%) 빠지면서 1500선 아래로 추락했다. 20일 한국과 미국의 6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로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23일 다시 내려앉았다. 주가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7월 수준으로 뒷걸음쳤다.

외국인들이 무차별로 주식을 내다팔고 있다. 3월 들어 누적 순매도 금액이 10조 원을 넘었다. 1999년 1월 이후 월간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원·달러 환율 폭등은 당연한 결과다. 19일 환율이 40원이나 한꺼번에 올라 11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23일 환율도 1266.5원을 기록했다. 최고의 가치인 달러 말고 기댈 곳 없는 시장의 반응이다.

충격파가 언제까지 증폭될지, 추락의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1997년과 2008년의 위기는 기업 부실과 금융의 문제였지만, 코로나 사태는 실물부터 가라앉은 복합위기다. 과거와 차원이 다른, 글로벌 경제 생태계의 근본부터 마비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인류의 일상을 멈춰세웠다. 각국은 국경의 빗장을 걸고 국가 간 이동을 막으면서 각자도생이다. 미국과 유럽의 폭발적인 감염 확산은 수습이 안 되고 있다. 나라 안, 또 밖에서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니 경제활동도 이뤄지지 않는다. 글로벌 생산과 소비가 중단되고 수요와 공급의 사슬이 끊기고 있다. 물건을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서 사줄 곳도 없다.

금융 패닉은 시작이다. 생산과 소비, 투자, 교역 등 실물경제 붕괴가 곧 지표 추락으로 확인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역에 기댄 한국 경제의 답이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 자영업자들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한계선상에 와 있고, 대기업까지 위기가 전이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모든 산업, 모든 기업, 모든 계층이 절박한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심각한 후폭풍은 기업들의 줄도산과 대량 실업이다. 국민경제와 민생의 나락(奈落)이다.

청와대의 경제비상회의가 가동됐다.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이다. 전쟁의 지휘봉을 잡은 문재인 대통령은 미증유의 위기, 비상한 상황, 전례 없는 대책을 계속 강조한다. 달라지고 있나? 시장은 신속·과감한 대책을 요구하는데, 대응은 한발짝 늦고 충분하지도 않다.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한국 경제는 코로나 이전 이미 심각한 기저(基底)질환을 앓아 왔다. 경제활력이 얼어붙고 성장동력이 실종됐으며 기업투자가 쪼그라들어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청와대와 정부가 실용을 무시하고, 이념으로 경제정책을 재단해온 탓이 크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를 내세운 반(反)시장, 대기업 배척, 노동편향 정책의 폭주가 가져온 결과다. 가라앉는 성장과 고용의 감소는 세금 풀어 떠받쳐왔다. 바닥인 경제체질에 코로나 사태는 치명타다.

비상경제회의도 전혀 미덥지 않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기에는 전대미문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한국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 있는 사람들 누구인가? 청와대 참모들, 각 부처 장관들 경제현장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가?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나? 기업과 시장의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위기관리 능력과 식견을 가진 인물부터 끌어와야 한다. 사람 바꾸기 어렵다면 발상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 어떤가? 일상적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 몸에 밴 유능한 민간 기업인들에 비상한 위기대응책을 맡겨보는 것이…. 그들의 역량에 더 믿음이 간다. 아니면 그들의 지혜라도 무조건 빌어와야 한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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