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현금 선호현상으로 금·미 국채 등 안전자산도 매도…달러는 수요 급증에 3년 만의 최고치
팬더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까지 번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투자자들의 현금 선호 심리가 심화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폭넓은 시장 쇠퇴에 직면한 투자자들이 매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있다. 주식과 원유 등 위험자산은 물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미 국채 시장에서도 매도세가 번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18일(현지시간) 모든 자산을 매각,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의 핵심인 단기 머니마켓에 불균형의 징후가 나오면서 대기업들도 잇따라 거액을 차입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긴급 진단했다.
WSJ는 투자자들의 현금 러시로 인해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요동쳤다며, 이러한 혼란은 최근의 시장을 더 ‘새롭고 걱정스러운 유동성의 단계(A new, more troubling liquidation phase)’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 국채와 금은 안정적인 ‘투자 도피처’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이들 자산에는 자금이 쏠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금과 미 국채는 초강세를 보였다. 금 현물 가격은 한때 온스당 1702달러까지 치솟는 등 7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하자 사상 처음으로 0.5%를 뚫고 내려가기도 했다. 국채 금리가 내렸다는 것은 가격이 그만큼 폭등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 장세를 이어가면서 불안이 극대화하자 안전자산의 인기도 추락했다. 자산의 종류에 관계 없이 모두 현금으로 바꿔 쌓아두겠다는 극단적인 현금 선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이날 현금화가 쉬운 미국 국채 1개월물 금리는 장중 한때 무려 마이너스(-)0.0033%까지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화가 쉬운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투자자들의 이 같은 자산 청산과 현금화는 달러 수요 급증으로 이어져 강달러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ICE달러인덱스는 2017년 4월 이후 처음으로 100포인트 이상으로 치솟아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아울러 이러한 투자자들의 현금 집착은 미국과 전 세계 머니마켓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달러 유동성을 나타내는 ‘테드(TED) 스프레드’는 1%포인트를 초과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이후로는 볼 수 없었던 수치다. 테드 스프레드는 미국 국채 3개월물 금리와 은행 금리의 차이를 나타낸 것으로, 은행이 단기 자금을 얼마나 쉽게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이 수치가 클수록 신용경색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휴교와 공장 폐쇄 등의 봉쇄 조치가 잇따르고 있어 기업과 소비자들도 임대료 등 고정비 지불을 위해 현금을 확대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이에 보잉과 힐튼월드와이드홀딩스, 크래프트하인즈,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 등 대기업이 대출 한도를 허물고 거액의 차입에 나서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번 주 기업어음(CP) 시장의 기능이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개입해야 할 이유가 됐다. CP시장에서 주 매입자인 머니마켓펀드(MMF) 등이 스스로 헤지에 대비, 투자를 꺼려서 기업의 이런 단기자금 수요에 대응할 수 없게 되자 연준이 나선 것이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이날 CP시장에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