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가입 조건 강화·소비자 부담 등…금융당국 보험료 인상 통제 역효과
높은 손해율에도 정부가 보험료 인상을 억제하자 보험사들이 인수 한도 강화에 나섰다. 손해율이 높은 고령자와 유병자는 가입문을 좁히거나 아예 가입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가격통제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이달부터 61세 이상이 실손보험에 가입하려면 진단심사와 표준형 담보만 선택 가능하도록 조건을 추가했다. 또한, 통원 의료비는 각 10만 원 이내로만 가입설계가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기존에는 66세 이상 가입 시에만 인수제한 기준이 있었다.
메리츠화재는 61세 이상에 대해서는 방문 진단 절차를 필수로 거치도록 변경했다. 또 실손의료비 전체 중 1개 이상에 가입했다면 방문 진단을 꼭 하도록 했다. 전화로 가입할 수 있는 전화심사 플랜도 폐지했다.
DB손해보험은 사고건 3건 이상 또는 예측손해율 130% 초과 계약 시 방문 진단이 필수다. 교차설계사의 경우 예측손해율 115% 초과 계약 건은 사업단장의 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한화손해보험은 방문진단 기준을 20세까지로 낮췄다. 5년 이내 사고 이력이 있으면 20세 이상은 방문 진단이 필수다. 이 밖에도 중소형사를 중심으로 방문 진단의 연령 기준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방문 진단은 보험사가 보험금이 많이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고위험자에게 실시하는 가입심사다. 청약단계에서 질병 이력 등을 고지하면 보험사의 판단에 따라 간호사 등을 파견해 혈압과 혈액, 소변 등의 검사를 통해 건강 상태를 심사한다. 가입기준을 강화해 가입 문턱을 높이겠단 의도다.
이 때문에 표준형 실손보험 가입에 거절된 고령자, 유병자 가입자는 보험료가 비싼 유병자 실손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정작 실손보험이 필요한 대상의 보험료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업계는 이를 두고 ‘정부 가격통제의 역효과’로 평가하고 있다. 실손보험 손해율이 날로 급증하는데도 정부의 가격 통제로 보험료 인상이 억제됐기 때문이다. 손보업계는 올해 실손보험료를 두 자릿수대로 올리려 했지만, 당국의 압박에 9%대 인상에 그쳤다. 업계에 따르면 손보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121.8%에서 올해 상반기 129.6%로 올랐고 3분기에 130%를 돌파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 필요성이 분명한 상황에서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손해율 관리를 위해 신규 가입자들을 걸러내는 수밖에 없다”라며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 인상이 이뤄지지 않는 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