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위기를 촉발한 미군의 이란 군부 실세 공격을 두고 백악관과 국방부의 대립이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 작전을 감행한 미 백악관에 대해 국방부 내부에서 반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해당 사건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해 백악관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미 국방부는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꺼내 든 대이란 위협 발언 수습에 나서면서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이란이 공격할 경우 52곳에 반격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여기에는 이란 문화에 매우 중요한 곳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 공군기지 두 곳을 공격한 이상, 트럼프의 공언대로라면 이란 유적지 공격이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의 이 발언이 국방부의 신경을 거슬렀다는 평가다. 미국이 준수를 서약한 무력 분쟁에 관한 국제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무력충돌법은 문화재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다른 나라에 동일한 규칙을 강조하는 미국의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이와 관련,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무력충돌법을 준수할 것이라며 선 긋기에 나섰다. 문화재 공격이 가져올 어머어마한 파장을 우려해 잘못된 신호 차단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과 국방부 간 갈등은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를 시사한 서한을 두고도 벌어졌다. 앞서 미군 이라크 태스크포스의 책임자인 윌리엄 실리 미 해병대 여단장이 이라크 연합작전사령부 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에 이라크 주둔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전날 이라크 의회가 미군 철수 결의안을 가결한 데 이어 미군이 행동에 나섰다는 분석이 더해지면서 불안을 고조시켰다.
이에 대해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논란이 된 미군의 이라크 철수 서한은 실수로 보내졌다면서 미군의 이라크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일부 국방부 관리들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사령관 공격 결정에 놀랐으며 그 파장에 대해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솔레이마니가 며칠 내 상당수 미국 외교관과 군인을 죽이려 했다면서 공격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에스퍼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도 해당 내용이 기밀 정보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국방부 내에는 사령관 살해가 가져올 파장을 더 고려했어야 한다는 견해가 팽배한 상황이다.
전 국방부 고위 관리는 “솔레이마니 제거는 국방부에서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이슈지만 벌집을 쑤셔서는 안 된다는 게 다수의 생각이었다”면서 “이라크 현지에 많은 미군 부대가 있어 미국에 약점이라는 이유에서였다”고 설명했다.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 위기까지 내몰린 미 국방부가 트럼프 행정부 사이에서 고뇌가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