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잠김ㆍ전세값 폭등 장기화 조짐…부동산 세제 강화, 세입자에 전가 비판도
서울에서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12ㆍ16 부동산 대책 여파가 본격화하고 늦겨울과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 ‘전세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눈 앞에 닥친 ‘공급 절벽’도 전세 수요자의 불안감을 부추긴다.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2단지 전용면적 66㎡형 전세 호가는 최근 5억1000만 원까지 올랐다. 올 봄까지만 해도 4억2000만~4억3000만 원에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1년도 안 돼 전셋값이 8000만~9000만 원 뛰어올랐다. 인근 G공인중개사 대표는 “전세를 구하려는 사람은 줄을 서 있는데 물건은 가뭄에 콩 나듯 나온다”며 “미리 예약을 해 두거나 틈틈이 물건을 확인하지 않으면 목동에선 전세를 못 구한다”고 설명했다.
마포구 공덕동 래미안5차 전용 84㎡는 전세 시세가 한 달 만에 훌쩍 뛰었다. 지난달엔 약 6억2000만 원에 전세계약이 성사됐지만, 이달엔 호가가 7억5000만 원까지 올랐다. 그마저도 집주인이 물건을 금방 들여놨다. S공인중개사 대표는 “전셋값이 올라도 물건이 없다”며 “정부 대책 이후에 물건이 나올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12ㆍ16 대책이 전세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전세 대출 요건이 강화되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갭 투자’가 어려워져서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시가 9억 원 이상 주택을 사거나 2주택 이상을 보유하면 대출금을 회수키로 했다.
또 종합부동산세 인상, 공시가격 상승 등으로 아파트 보유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늘면서 전셋집의 투자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집주인으로선, 세금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하려면 전세보다는 월세나 반전세 (보증부 월세ㆍ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받는 것)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주택자를 겨냥해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을 늘렸지만, 정작 그 부담은 세입자에게 전가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얼마 전 경기 분당신도시 이매동에 대형아파트를 매입한 한 모 씨는 “정책이 바뀔 때를 기다리면서 반전세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12ㆍ16 대책의 부작용이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전세난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4억1773만 원이다. 전셋값이 바닥을 찍었던 7월(4억1362만 원)보다 1.0% 상승했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7월부터 다섯 달 넘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시 확대, 외고ㆍ자사고ㆍ국제고 폐지 등 교육제도 개편을 발표하면서 학원가나 명문고 주변 전셋값이 크게 뛰었다. 2~4월 새 학기와 맞물려 이사철이 시작되면 전셋값 상승세가 길어질 수 있다.
2021년부터는 신축 아파트 공급 절벽도 현실화된다. 부동산 114는 2021년 서울 입주 아파트 물량이 2만1739가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2012년(2만137가구) 이후 최소치다. 부동산 시장에서 추산하는 서울의 신규 주택 수요(4만~5만 가구)보다 2만~3만 가구가량 부족하다. 올해 공급 규모(4만3006가구)와 비교해도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게다가 주택 인허가 실적 역시 감소세여서 공급 부족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세시장으로 몰리면 전세난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방송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급을 늘리는 정책이 추가로 발표되지 않으면 전셋값은 중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번 대책으로 매매나 신규 분양을 기대하던 수요자들이 전세시장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분양가 상한제 등 같은 정책은 오히려 신규 공급을 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