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한 토막] 토하, 창난 그리고 식해

입력 2019-12-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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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라 편집부 교열팀 차장

몇 해 전 처음으로 혼자 김장을 한 적이 있다. 싱싱한 배추를 사서 굵은 소금에 절였다. 그런데 열 시간이 지나도 배추는 절여지지 않고 여전히 생생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김칫소를 만들었다. 멸치젓, 창난젓, 갓, 고춧가루 등 십여 가지의 갖은 재료를 듬뿍 넣고 만든 김칫소로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다. 오전에 시작한 김장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몸은 녹초가 되어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구부러진 것 같았는데, 배추김치는 여전히 빳빳함으로 몸을 굽힐 줄 몰랐다. 수개월이 지나도 숨이 죽지 않은 김치는 맛마저 없어서 김치찌개로도 인기를 얻지 못했다.

김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채소 발효 식품이다. 지방마다, 집안마다 김치 담그는 비법이 달라 김칫소에 들어가는 재료도 매우 다양하다. 이때 맛을 가르는 주재료 중 하나가 젓이다. 젓은 새우, 조기, 멸치 따위의 생선이나 조개, 생선의 알, 창자 따위를 소금에 짜게 절여 삭힌 음식을 말한다.

시중에 파는 젓의 이름을 살펴보니 갈치젓, 멸치젓, 까나리젓, 황석어젓, 토화젓, 창란젓 등 생선이나 조개·생선의 부속물에 따라 이름이 다양했다. 그런데 그중 토화젓, 창란젓은 잘못된 표기이다. 민물새우인 생이는 토하(土蝦)이므로 토하젓이라고 해야 한다. 또 창난은 명태의 알이 아니라 창자이므로, 창난젓으로 써야 맞다.

그러면 가자미에 고춧가루와 조밥 따위를 섞어 삭힌 함경도 음식은 가자미식혜일까, 가자미식해일까. 가자미식해가 맞다. 식해(食醢)는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음식을 말한다. 반면 식혜(食醯)는 밥에 엿기름물을 부어 따뜻한 곳에서 삭혀 설탕을 넣고 끓여 차게 식혀 먹는 음식이다. 토하젓, 창난젓, 가자미식해 등 각종 젓갈은 김칫소 재료로 많이 이용되지만 그 자체로도 맛있어서 밥 위에 올려놓고 먹으면 일품 음식이 된다.

오늘 저녁에는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김치의 속을 한번 살펴보는 건 어떨까. 토하, 창난, 식해 등 어떤 종류의 젓이 배추와 버무려져 있는지, 채소가 몇 가지나 섞여 있는지 세어 보자. 각각의 재료들에 들어 있는 영양소도 생각해 보자. 이 세상 음식 중 김치만큼 몸에 좋은 재료가 다양하게 섞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 음식이 있을까 감탄하게 되는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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