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 배경에는 높은 분양가격이 주변 시세를 자극해 집값을 끌어올리게 되므로, 분양가를 낮추면 집값이 뛰지 않을 것이라는 다소 순진한(?) 발상이 있는 것 같다.
집값을 결정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다. 시장의 수급이 기본이겠지만, 경기 상황이나 금리 등 시장 외부 요인도 작용한다. 이런 다양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결국 매도자와 매수자의 줄다리기에 의해서 결정된다. 팔 물건이 많으면 집값은 떨어지고 살 사람이 많으면 집값은 오른다.
분양가격이 집값의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분양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꼭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집값의 기준이 되는 가격은 분양가 이외에도 많다. 전세가격이나 주변의 매매가격, 공시가격 등도 집값의 기준이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분양가를 일시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지만 싼 분양가는 주택 유효 수요층을 대기 매수자로 바꾸게 되고, 이들을 전세로 내몰아 이번에는 전세가를 올리게 된다.
분양가 상한제는 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사업 수지를 악화시켜 분양 물량을 감소시키면서 이미 지어진 새 아파트의 희소성을 더욱 부각시키게 된다. 또 신규 분양 물량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전세난을 더욱 악화시켜서 급격한 전세가 상승을 부르게 된다.
2017년 하반기~2019년 상반기까지 수도권 입주 물량의 증가로 인해 안정되었던 전세시장은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 2018년 25만 가구에 달했던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21년에 10만 가구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통상적으로 수도권 아파트 신축이 15만 가구 이하이면 전세난이 발생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2021년 이후의 전세난은 역대급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 정도로 급격한 물량 감소가 예상된다면 정부는 당연히 공급 물량이 늘어날 수 있도록 공급에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이런 시점에서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는 것은 더욱 위험해 보인다.
주택 수요자가 원하는 집은 양질의 주택 공급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인공지능형 아파트를 소비자들은 원하고 있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는 앞으로 저품질의 '정부미' 아파트를 양산케 할 것이다. 주택 시공사들도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아파트 공급보다는 주거형 오피스텔 등 대체 주거상품의 공급 등으로 물꼬를 틀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장기적으로 국민 주거의 질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는 일시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양질의 아파트 공급을 막고 전세난을 일으킬 뿐 아니라, 높은 전세가 상승률로 인한 매매가의 급격한 상승을 불러올 것이다. 자금력이 좋은 무주택자는 로또 청약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서민들은 분양가 상한제로 인해 더욱 나쁜 주택으로 밀려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과거 참여정부에서도 2007년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지만, 그 때에는 2년여의 유예기간을 주어서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전후해서 오히려 밀어내기식 공급이 나왔었다. 참여정부처럼 유연한 정책 대응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