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칼럼니스트
헌혈하는 사람에게 보상금 지급하면
스웨덴에서 했던 실험이다. 실험 내용은 헌혈한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헌혈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평가해 보는 것이었다. 실험 전에, 사람들은 돈을 받을 때가 돈을 전연 받지 않을 때보다 헌혈을 더 많이 할 거라고 대부분 추측했다. 세상에 돈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게 이런 추측의 근거였음은 물론이다. 큰돈이 아닐지라도 돈은 헌혈에 소극적인 사람조차 헌혈에 참여하게 만드는 좋은 유인책으로 작용할 거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하자 헌혈하려는 사람 수가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대체로 헌혈은 이타적 동기에서 하는 건데, 보상금을 받게 되면 자기의 헌혈 행동이 돈이라는 보상을 얻기 위한, 불순한(?) 것이 돼 버리니까 헌혈하기가 싫어진 것이다.
만일 이 보상금 지급 실험이 실험에 그치지 않고 헌혈 성과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 추진됐다면 당초의 좋은 의도와 달리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행동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레짐작만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설령 그 의도가 좋더라도,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잘 말해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인민의 적인 참새를 없애버려라?
1949년 중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중국의 통치자 마오쩌둥이 식량 증산을 독려하기 위해 농촌을 방문했는데, 그는 벼 낟알을 쪼아 먹는 참새 떼를 봤다. 그는 참새를 가리키며 “참새가 쪼아 먹는 쌀알만 지켜내더라도 수확량은 증가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 말 한마디가 강력한 명령으로 작용하여 정부 기구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탄생했다. 그리고 참새, 쥐, 파리, 모기가 ‘사해(四害)’로 지정되고 대대적인 박멸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됐다.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전 인민이 동원되어 대대적인 참새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어린아이들조차 참새 잡는 일에 동원되었다. 10억 인구가 냄비와 세숫대야까지 두드리며 쫓아다니는 통에 무수한 참새가 이리저리 쫓겨 날다가 지쳐서 떨어져 죽었고, 결국 참새는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엉뚱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참새 소탕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곡식 수확량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정반대로 된 것이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를 비롯한 온갖 해충이 창궐하여 농작물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참새는 그동안 곡식 낟알을 쪼아 먹기도 했지만, 곡식을 갉아먹는 해충도 잡아먹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1959년에 역사적인 대흉년을 맞이하였다. 굶어 죽은 사람이 공식 발표로 1000만 명(실제론 4000만 명으로 추정)이 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소련 정부에 요청하여 연해주의 참새 20만 마리를 긴급 공수하면서 참새 소탕작전도 종결됐다. 자연 생태계의 복잡 미묘한 특성을 알지 못하고 뜨거운 사명감만으로 일을 추진하면 얼마든지 가공할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코브라 소탕 정책의 귀결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 당시 델리에서는 사람이 물리면 즉사하게 되는 코브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코브라에 물려 죽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런 코브라의 수가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심각한 문제는 국가적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상당히 기발해 보이는 대책이 제시됐다. 죽은 코브라를 가져오면 ‘한 마리당 얼마’ 하는 식으로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여 시행한 것이다.
이 정책은 시행 초기엔 제법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상금을 받으려고 코브라를 잡으면서 코브라의 수가 제법 줄어드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자 다시 코브라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이 전개됐다. 코브라를 잡아서 포상금 받는 일이 수익성 괜찮은 사업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코브라 잡기에 나서다 보니 어디 가서 코브라 잡기도 쉽지 않은데, 차라리 코브라를 사육하여 보상금을 받는 게 훨씬 낫겠다고 착안하여 사람들이 코브라 기르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결국 인도 정부는 이 정책을 폐지했고, 화가 난 코브라 사육 사업자들은 기르던 코브라를 풀어놓아 버리기까지 했다. 코브라 수가 정책 시행 이전보다 오히려 증가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발상’에 기초해야
중요한 의사결정이든 국가 장기정책이든 간에 적절한 발상이 없으면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모든 발상은 실질적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
이런 실질적 발상은 목표 달성을 향한 의지가 강하다고 하여 저절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그뿐 아니라 강고한 의지나 맹렬한 의욕은 당초 의도한 성과가 도출되는 걸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다. 목적의식이 전무하거나 미약한 채 어떤 과제를 추진할 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그러나 관련 변수들이나 부정적 영향을 세심히 검토하지 않고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건 무모한 행동일 뿐이다. 정책은 궁극적으로 목표를 잘 맞혀야 하는데, 무조건적 당위론에만 사로잡혀 추진하다가는 큰 실패로 종결되기 십상이다.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폭넓게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지속가능성의 측면 또한 깊이 고려해야 하고, 인간의 심리적 측면을 올바로 읽으려는 노력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의성(時宜性, 타이밍)이다. 흔한 말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만드는 사태를 초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심모원려(深謀遠慮), 심사숙고(深思熟考)의 자세가 필수적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설익은 정책·경솔한 의사결정 판쳐
이즈음 우리 사회는 조국 장관 문제로 온통 난리법석이다. 참으로 의아한 점은 대통령이 너그러운 상식적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한 조국을 끝내 법무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난리는 상당한 기간이 흘러야 종결될 듯하다. 지금 시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장관 임명이란 중요한 의사결정이 대단히 안이, 경솔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번의 이 인사 말고도 현 정부 들어서서 얕은 사고에 기초하여 경솔하게 추진, 시행된 정책이 한둘이 아니다. 영향력이, 그리고 때론 부작용이 엄청나고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 여러 국가정책이 전문적 수준에서의 심도 있는 논의나 검토 없이 조급하게 결정, 공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앞에서 말한 ‘좋은 발상’의 요건에 비추어 본다면 정책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조잡한 아이디어가 떡하니 국가정책으로 채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왔다.
시행 도중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이 나타나면 시행을 중지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등 적어도 유연하게 대응하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에게서는 이런 최소한의 유연성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그야말로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부를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위기라고 부르는 게 틀리지 않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분명 위기에 처해 있다. 참으로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