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초등학생 임원 선거까지 사교육 개입…불공정ㆍ불평등 심화시킬 것"
1990년대 즈음만 해도 ‘웅변학원’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교에서 웅변대회가 사라져 감에 따라 ‘웅변학원’도 차츰 사라져 갔다.
웅변학원은 사라졌지만, ‘스피치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제2의 웅변학원이 부활하고 있다. 최근 생겨나고 있는 스피치학원은 성인 프레젠테이션 스피치, 취업준비생을 위한 면접 스피치, 대입 수시면접 등을 위한 고교생 스피치를 가르쳐 준다.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키즈 스피치’라는 이름의 초‧중학생 대상의 스피치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급, 또는 학교 임원을 선출하는 임원 선거를 대비한 스피치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다. 리더십 능력 증진 뿐 아니라, 중‧고입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이력을 만들기 위해 자녀가 임원에 당선되길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키즈 스피치학원은 임원 선거를 대비한 학생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통상 다수로 진행하는 학원 교습과 달리 일대일 과외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말하는 교육 외에도 원고 작성까지 도맡는다.
수도권에 있는 한 키즈 스피치학원에서는 “임원 선거 스피치는 일주일에 2회의 수업을 진행하고, 보통 선거를 앞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4회 정도 스피치 교육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학원의 임원 선거 스피치 교습료는 회당 8만 원. 상담대로 4번 교육을 받을 경우 총 32만 원짜리 과정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교육 과정에 대해 “학생과 상담한 뒤 학생의 스피치 능력을 고려해 원고를 함께 작성한다”면서 “임원 선거에 필요한 연설을 위해 간단한 퍼포먼스, 시선 처리, 제스처 등을 준비하고,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학부모에게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임원 선거용 키즈 스피치 시장은 시세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일단 부르는 게 값이다. 형성된 지 얼마 안 된 시장인 만큼, 학원마다 천차만별의 가격을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위치한 또 다른 키즈 스피치학원 관계자는 “정해진 가격이 있는 게 아니다. 원장님이 수업하느냐, 강사가 수업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달라질수 있다”면서 “자세한 비용은 자녀와 함께 내원해 상담한 뒤 결정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통계청과 교육부가 공동으로 작성해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초등학교 사교육비 총액은 8조1311억 원 규모로 전년보다 5.2% 증가했다. 이는 초‧중‧고 전체 사교육비 규모 증가율인 4.4%를 상회할 뿐 아니라 중학교 3.5%, 고등학교 3.9%의 상승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중‧고교 사교육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름에 따라 점차 저연령층 사교육 시장이 넓어지는 추세로 해석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초등학교 임원 선거에까지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상황은 교육 현장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초등학교 임원 선거까지 선거전 홍보, 유세 연설이 외부에서 학교로 유입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사회적 풍토”라며 “학교 교육의 일환인 임원 선거까지 사교육이 개입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공평과 불공정성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