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연구소장
만년필 세계에서 빌 게이츠처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예를 찾을 수는 없지만,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주자인 워터맨, 셰퍼와 몽블랑 등에 실수가 있었다. 모세관 현상을 이용해 실용적인 만년필 세계를 연 워터맨은 191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 동안 내놓는 것마다 승승장구, 적수가 없는 회사였다. 이미 1900년대 초반 자사의 펜촉, 지구의(地球儀) 모양의 상징, 만년필을 만드는 재질인 하드러버(hard rubber·경화고무) 공장까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 들어서면서 30년이나 늦게 만년필 사업을 시작한 셰퍼의 공격적 경영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셰퍼는 1920년대 초 만년필 사용자의 평생 사용을 보증하는 평생보증 만년필과 플라스틱 재질의 만년필을 연달아 성공시켜 만년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 그 성공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것은 워터맨이었다. 반면 워터맨만큼이나 오래된 회사인 파커는 이 평생보증과 플라스틱 재질에 재빨리 대응했지만 워터맨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플라스틱 재질이 많이 늦었다. 파커가 플라스틱 만년필이 나온 지 2년 만인 1926년 플라스틱 만년필을 출시했지만 워터맨은 5년이 지난 1929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1929년의 플라스틱 만년필은 상당히 늦은 것이었다. 당시 만년필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던 독일의 몽블랑이 1928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만들었고, 그보다 더 변방인 일본의 파이로트 역시 1927년에 플라스틱 만년필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워터맨은 하루라도 빨리 플라스틱 만년필을 내놓았어야 했다.
현대 최강자인 몽블랑 역시 이 새로운 경향의 잉크충전 방식의 원조인 피스톤 필러 때문에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이 방식을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은 같은 독일의 펠리칸이었는데 이 특허권자가 몽블랑과 먼저 접촉했기 때문이다. 만약 몽블랑이 이 특허를 그때 사들였다면 현대 유일한 만년필 세계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펠리칸은 만년필 회사로 존재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 회사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 회사, 나아가 국가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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