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예견(豫見)과 예단(豫斷)

입력 2019-07-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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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지난 월요일 윤석렬 검찰총장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금년 초에 윤석렬 후보자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만난 것에 대해 어떤 의원이 “(장차) 피의자가 될 사람을 몇 달 전에 만난 것은 적절한 일이었냐?”고 물었다. 금년 초에 만난 사람이 6월 달에 피의자로 고발되었는데 그걸 예견 못하고서 만난 게 잘한 일이냐고 따진 것이다.

몰론, 앞날을 미리 내다보는 혜안(慧眼:본질을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율곡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남편 이원수가 당시 어떤 한 사람과 지나치게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서 “그 사람은 장차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사람이니 너무 가까이하지 마시라”는 충고를 함으로써 훗날 남편에게 화가 미치지 않게 한 일은 혜안의 대표적 사례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이처럼 사람을 꿰뚫어 보고서 가까이 지낼 사람과 멀리할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마다 그런 능력과 안목을 기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결코 아니다.

혜안을 가지고 미리 내다보는 것을 예견(豫見)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예견은 자칫 매우 경망스런 예단(豫斷)으로 둔갑할 수 있다. ‘미리 예(豫)’와 ‘볼 견(見)’을 쓰는 豫見은 미리 내다보고서 잘 대비한다는 뜻이지만, ‘끊은 단(斷)’을 쓰는 豫斷은 섣부른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주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예견을 잘 못 해도 낭패가 될 수 있지만 무리한 예단은 일을 그르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칫 예견이 예단으로 둔갑하거나 전락할까 봐 예견하기를 신중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차 피의자가 될 사람을 몇 개월 전에 만난 일을 가지고 “그게 잘한 일이냐?”고 따지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피의자가 아닐 때 피의자로 예단하여 만나기조차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비인격적인 처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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