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정책 변경에 인내심을 갖겠다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태도를 바꿔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파월 의장은 4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통화정책 콘퍼런스 연설에서 글로벌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을 우려하면서 “미국의 경제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 탄탄한 고용시장과 목표치 2% 안팎의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기확장 국면이 유지되도록 적절하게 대응하겠다”며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장 환호=파월의 금리 인하 시사에 4일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512.40포인트(2.06%) 급등한 2만5332.18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4일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상승폭이다. 3거래일 만에 2만5000달러대를 회복했다. S&P500지수는 58.82포인트(2.14%) 오른 2803.27에 장을 마감했다. 5일 아시아증시도 급등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59.35포인트(1.27%) 오른 2만0667.89로 거래가 시작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급락하던 국채 금리도 반등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119%로 전날보다 0.034%포인트 올랐다. 2년물 국채금리도 0.024%포인트 상승했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안전자산인 미 국채의 매력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선트러스트 프라이빗웰스의 케이스 러너 시장전략팀장은 “시장은 파월 의장으로부터 듣기를 원했다”면서 “시장이 ‘파월 풋’(Powell put)을 믿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하락장에서 손실을 줄이고자 매입하는 ‘풋옵션’에 빗대, 파월 의장이 투자자의 손실을 막아주는 구원투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파월의 변심, 왜=불과 이틀 전만 해도 파월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일축했다. 그는 2일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좋은 지점에 있고 전망도 양호하다”며 “금리 정책의 변화를 서두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파월의 이같은 의지는 연준의 통화정책에 그대로 반영돼 왔다. 연준은 지난 1월 기준금리를 현행 2.25~2.50%에서 동결하기로 발표한 이후 금리정책에 인내심을 갖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발표한 성명에서 “세계 경제 및 금융의 전개와 낮은 물가 상승 압력을 고려해 연방기금 금리 목표 범위에 대한 향후 조정을 결정할 때 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의 입장 변화에는 관세로 촉발된 미중 무역 전쟁이 도화선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또 추가로 30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나머지 전체 중국산 제품에도 25%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6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미중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시장 경기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미국과 중국의 관세전쟁이 예고된 대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1년 안에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 트럼프 압박 먹혔나=연준의 금리인하 시사 발언을 두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이후 연준의 금리 정책에 여러 차례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연준의 통화정책이 경제와 증시를 옥죄고 있다면서 “연준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금리 동결 방침을 고수하는 파월 의장을 향해 “억지로 같이 간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가 강경 발언을 쏟아내도 인내심을 유지해오던 연준이지만, 트럼프가 쏘아올린 관세 전쟁이 글로벌 경제를 침몰시킨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자 금리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