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바이오부 차장
오경환 샘표식품 부사장의 이야기다. 투병 중에도 현직에 머무르며 간장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했던 그는 조선 간장을 재현한 일등공신으로도 꼽힌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사를 통해 소개된 일화가 비난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생전의 그는 간장 발효의 핵심인 미생물 연구에 매진하던 중 일본의 유명 간장 기업을 방문하게 됐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본 간장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어떤 미생물이 사용했을까’로 번졌다. 그는 회사의 발효실 방문을 위해 해당 회사 임직원들을 수없이 설득한 끝에 발효실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연구하고 싶었던 그는 발효실에서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콧속에 미생물을 담기 위해서였다. 발효실을 나온 후 코를 푼 후 휴지를 고이 간직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콧속 미생물을 수차례 분석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일본의 미생물을 가져와 연구했다”는 이 대목에서 오 부사장에 대한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 ‘산업스파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씌운 댓글들은 일파만파 퍼지며 고인의 생전 업적마저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샘표식품 직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오 부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생전에도 그에게 빚이 많은 샘표가 작고한 후에도 큰 빚을 지게 됐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명백한 ‘사자(死者) 명예 훼손’에 유족들은 두 번 울어야 했다.
오 부사장의 미생물에 대한 열정을 누리꾼들의 비난처럼 산업스파이로 볼 수 있는 걸까. 전문가들도 고개를 가로젓는다. 훔쳐온 미생물로 직접 간장을 만들었다면 산업스파이로 볼 수 있겠지만 성분에 대한 연구만으로 산업스파이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 변리사들의 설명이다.
화장품의 경우 전 성분 표시제를 시행한다. 해당 화장품에 들어가는 모든 성분을 표시한다. 그러나 함량 표시는 없다. 누군가 똑같은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같은 효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특허 성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적재산권 침해를 논할 수 없다. 하물며 발효 시 온도와 습도를 비롯해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는 미생물을 단지 연구했다는 이유로 간장 명인에게 산업스파이라는 오명을 지울 수 있을까.
익명성이라는 울타리가 만든 온라인상의 공간은 손가락을 세 치 혀보다 무서운 칼로 만드는 사례가 넘쳐난다. 입으로 전해지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수천, 수만 명에게 전파된다. 오 부사장을 향한 칼날이 언제 누군가에게 옮겨갈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오 부사장의 사례를 보며 손끝에 실리는 무게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