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하노이의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를 표현하는 말들이 여러 가지이다. ‘결렬’이라고 하는가 하면 ‘무산’이라고도 하며, 어떤 측에서는 ‘꼴좋은 실패’로 보면서 오히려 실패를 반기는 것 같고, 어떤 측에서는 ‘안타까운 불발’이라며 못내 아쉬워하는 것 같다.
결렬은 決裂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물 갈라질 결’, ‘찢어질 렬’이라고 훈독한다. 決은 한 줄기로 흘러오던 물줄기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지형의 변화로 인해 두 줄기 이상으로 분명하게 갈라지는 상황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후에 분명한 판가름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되면서 ‘결정(決定)’, ‘판결(判決)’이라는 단어를 이루어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裂은 ‘列(늘어설 열)’과 ‘衣(옷 의)’가 합쳐진 글자로서 옷과 같은 천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서 사방으로 널리는 상황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러므로 決裂은 “의견이 분명하게 갈려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찢어져 갈라서게 되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외에 현 상황에서는 재협상의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무산은 ‘霧散’이라고 쓰며 ‘안개 무’ ‘흩어질 산’이라고 훈독한다. 해가 뜨면서 끼었던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듯이 서로 논의하던 일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실패는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치는 것을 통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말이다. ‘아니 불(不)’과 ‘쏠 발(發)’을 쓰는 不發은 원래 “총알이나 폭탄 따위가 발사되지 않음”이라는 뜻인데 그 의미가 확대되어 “계획했던 일을 못하게 됨”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봉창 의사가 일본의 국왕을 죽이기 위해 던진 폭탄이 ‘불발’함으로써 의거가 ‘불발’된 것이 바로 ‘불발’이라는 말의 좋은 용례이다.
이렇게 의미를 따지고 보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이 아니다. 무산은 더욱 아니다. 실패나 불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