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필자는 어린 시절에 수줍음이 많아서 쉽게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어머니께서는 이런 나를 두고 비위치레를 못한다고 나무라시곤 하셨다. 지금도 자신이 있는 분야에 대한 강의나 강연 외에는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해 부담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비위치레는 ‘비위’와 ‘치레’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비위는 ‘脾胃’라고 쓰며 각 글자는 ‘지라 비’, ‘밥통 위’라고 훈독한다. 소화기관인 밥통, 즉 위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지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 장기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라는 척추동물이 가진 림프기관의 하나로서 위의 왼쪽이나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림프기관은 병원체나 종양세포 등을 인지하고 죽임으로써 질병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데, 위에 붙어 있는 이 지라는 음식물을 대했을 때 먹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여 위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므로 비위가 튼튼한 사람은 음식물을 보는 순간 뭐든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비위가 약한 사람은 모양이나 냄새가 조금만 이상해도 ‘비위가 확 상하여’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여기서 의미가 확대되어 비위는 “아니꼽고 싫은 일을 견디어 내는 힘”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치레’는 ‘겉으로 꾸미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비위치레는 선천적으로 싫어하는 일이거나 후천적으로 당하는 아니꼽고 싫은 일, 즉 비위 상하는 일을 잘 견디는 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처럼 걸핏하면 주눅이 들 정도로 비위치레를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뻔뻔스러울 정도로 비위치레를 잘하여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고서도 전혀 과오가 없는 양 뻔뻔스럽기 그지없이 때만 되면 국회의원, 혹은 지자체장, 혹은 대표 등을 하겠다고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넉살 좋은 비위치레에 비위가 확 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