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준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소장
최근 한국 기업지배구조를 뜯어보면 이 같은 책임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8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 보고에 따르면, 56개 분석 대상 기업의 총수일가 이사 등재 비율은 15.8%로 4년 연속 감소했다. 총수 본인이 등기이사인 비율도 5.4%에 불과했다. 그룹 관련 사회적 이슈가 많아지면서 부담을 느낀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비율도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법적 책임을 짊어지는 주체는 결국 회사의 등기이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주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너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영상 현실과 법적 책임의 괴리를 줄이려면 총수일가의 등기임원 등재는 확대되는 것이 온당하다.
총수의 법적 책임과 등기이사 선임 사이에는 현실적인 적합성 문제도 있다. 주총 실무를 다루다 보면 기업가치를 훼손한 오너가 사내이사 후보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법 감정이나 대표이사 역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사적 이익을 위해 횡령이나 배임으로 확정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이사의 경우 선임을 반대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다. 한국과 같은 지배주주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너가 등기이사로 선임되지 않았다고 해서 경영 개입을 관둘까. 어차피 경영에 관여한다면 이사로 등재하고 그 권한과 역할에 대해 떳떳하게 책임을 지게 하는게 옳지 않을까. 더구나 인수합병(M&A)이나 대규모 투자 집행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라면 전문 경영인이 혼자 결정하기엔 역부족일 수도 있다. 사면과 복권이 되었다면 회사 발전을 위해 총수의 이사 선임에 찬성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수도 있다. 장단점은 공존하겠지만 이를 통해 미래에 창출되는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의 증대 효과가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총수일가의 이사 등재 문제를 국내 대기업 집단의 소유지배 괴리 측면에서 보면 더욱 절실하다. 이론적으로 주주는 회사에 자본을 투입한 만큼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기업 총수가 소유한 지분과 의결권 확보를 통해 실제로 행사하는 지배력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계열사의 내부 지분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오너가 지분이 많은 회사일수록 그 의사결정이 나머지 주주들의 이해관계와 비슷해진다. 회사를 위한 결정으로 대주주 본인뿐만 아니라 나머지 주주들도 그 이익을 향유하기 때문이다. 오너의 지분율이 높은 지주회사가 배당을 많이 하는 것이 그 예다.
반대로 총수 지분이 적은데 지배력이 큰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당사의 분석에 의하면, 국내 주요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에 대한 친족의 평균 지분율은 1.6%인 데 반해, 내부 지분율은 53.7%다. 상법상 1주1표제의 취지가 왜곡될 여지가 있다는 것은 논외로 치더라도, 오너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땐 회사의 경영을 담당하는 지배주주와 대다수 주주들 사이에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가 그 전형적인 예다. 총수의 자녀나 친족들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경우는 빈번하다. 1%대의 지분으로 계열사 과반수 이상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각종 기업 활동에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생길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경영자의 역할에 맞는 책임(Responsibility)을,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만큼 책임(Accountability)을 물을 수 있어야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된 기업이다. 총수일가의 이사 등기는 기업지배구조의 합리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룹 핵심 계열사는 더욱 필수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