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음력 10월 20일경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 무렵에 부는 몹시 매섭고 추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손돌은 ‘孫乭’이라고 쓰며 사람 이름이다. ‘乭’은 중국에는 없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로 ‘石(돌 석)’에서 ‘돌’이라는 뜻을 따고 ‘乙(새 을)’에서 ‘ㄹ’받침을 따서 순우리말 ‘돌’을 표기했다.
봉건시대 하층 계급의 남자 이름인 ‘돌쇠(乭金 혹은 乭釗)’를 표기할 때 많이 사용했던 글자이다. ‘손돌(孫乭)’ 또한 성이 손(孫)인 하층민의 이름 ‘돌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손돌은 미천한 신분의 뱃사공이었다. 손돌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고려 23대 왕인 고종이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피란을 가던 때의 일이라고도 하고, 조선시대에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한강을 건너던 때의 일이라고도 한다. 손돌(孫乭)이 왕이 탄 배를 젓는데 왕이 보기에 일부러 물살이 급한 곳으로 배를 모는 것 같았다. 물살이 세지 않은 곳으로 뱃길을 잡으라고 했지만 손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의심 많은 왕은 손돌을 참수하고 말았다.
참수당하기 직전, 손돌은 바가지를 물에 띄우며 바가지가 떠가는 대로 따라가라고 했다. 물살이 점점 급해지자 일행은 하는 수 없이 손돌이 가르쳐준 대로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그 뒤를 따랐다. 무사히 뭍에 내린 왕은 그때야 비로소 손돌의 재주와 충심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후하게 장사를 지내주는 일 외에 왕이 할 일은 없었다. 이때부터 해마다 소설 무렵에 부는 차고 사나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충심을 볼 줄 모르는 왕에게 충신이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국민이 왕인 시대이다. 다시는 손돌과 같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억울하게 죽게 한 다음에야 절규하며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를 되뇐 아픈 역사가 적지 않다. 인물을 알아보는 바른 눈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