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필자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중국 하남(河南)성 정주(鄭州)에서 열린 ‘과문화(跨文化) 한자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베트남 대만 캐나다 독일 등의 연구자 120명이 모여 열띤 발표와 토론을 벌인 학술회의이다.
‘과문화(跨文化)’의 ‘跨’는 ‘넘을 과’라고 훈독한다. 과문화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흔히 ‘Cross-cultural’이라고 표기한다. 최근 중국에서 중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하되 주변의 문화와 소통하고자 하는 학문 조류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문화상호주의’쯤 되겠지만, 늘 중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중심에 두고서 주변과의 상호 소통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문화상호주의’와 완전히 같은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번에 열린 ‘제1회 과문화(跨文化) 한자 국제학술회의’도 외면적으로는 ‘과문화’라는 이름 아래 상호간의 문화 소통을 강조하는 학술대회로 보였지만, 내용상으로는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의 한자문화도 장차 중국의 한자문화 안으로 포함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다고는 보이지 않아서 필자는 적잖이 씁쓸함을 느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중에는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의 학자들이 우리나라의 옛 비석이나 고문헌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다수 있었다. 쌍계사에 있는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에 대해 같은 비문 안에 보이는 동자이형(同字異形)을 정리하여 그런 이형을 띠게 된 원인을 분석한 논문 앞에서 필자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 연구를 하고 있는가? 최근 베트남도 한자를 다시 사용할 조짐을 보일 뿐 아니라, 한자문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만 한자를 버려야 할 유물로 여기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동아시아에서 문화후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한자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