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팀장
최근 방영 중인 '미스터 선샤인' 드라마를 보다가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떠올랐다.
국내 금융이 외국계 금융기관에 여러 차례 호구가 된 일도 이미 알려진 것만 수차례다. 과거 SK그룹의 선물투자 대규모 손실, 키코 사태 때도 외국투자자들은 큰돈을 벌어들였다. 해외 투자은행(IB)이 만든 복잡한 구조의 상품을 국내에 들여와 팔 때, 그것이 금융산업에 미칠 영향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복잡한 상품구조에 대한 분석 능력이 없는 우리나라는 꼼짝없이 당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미들은 물론 기관까지 속절없이 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 주인공은 일명 ‘멸치’. 최근 증권 관련 인터넷 카페나 게시판 등에서는 '메르치', '멸치'라는 단어가 자주 올라온다. 대개 내용은 개인투자자들이 메릴린치 증권사 창구의 초단타 매매에 분통을 터트리는 글들이다.
중소형주에서도 세계적인 대형 증권사 메릴린치가 초단타 매매를 일삼자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덩치값을 못한다'는 의미로 ‘메르치’ 또는 ‘멸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메릴린치가 코스닥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부터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빈도나 종목수가 많아지고 매매 형태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700여 종목을 매매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수백억 원대 중소형주까지 매매 상위에 자주 목격되는 메릴린치의 매매 패턴은 일반적인 프로그램 매매나 개별종목 매매와는 형태가 다르다. 업계에서는 일종의 알고리즘 기법이 적용된 퀀트펀드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퀸트 트레이딩은 몇백 개 이상 종목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이다.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량의 금액만을 사고팔면서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든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소량의 금액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소형주에서 메릴린치 창구의 매매가 장중 20%를 넘어서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시세 관여로 증권당국의 경고나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우려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한 예로 25일 오전 11시 30분까지 18만 주가 거래되고 있던 한 상장사는 메릴린치 창구로 4만 주가 매도된 상태에서 5만여 주 매도 주문을 또 내놓으며 주가를 하락시켰다. 19일 B상장사의 경우 1000여 주 매수를 하던 메릴린치는 주가가 순간 급등하자 단 1~2분 사이 10여만 주를 순식간에 팔아치웠다. 그 시점 거래량의 20%가 훌쩍 넘는 수량이다.
일부에서는 주가를 하락시키고자 할 때 보유 주식 매도나 대주매도뿐 아니라 무차입공매도까지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수개월 동안 순매수한 수량의 몇 배에서 몇십 배의 주식을 단 몇 분 사이 팔아치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국내 증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메릴린치의 초단타 실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투자자들은 더욱 알 리가 만무하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고 하는데, 상대를 모르니 ‘백전백패’인 것이다.
미국 증권당국은 이미 2014년 퀀트 알고리즘 매매에 대해 규제에 나섰다. 볼커롤, 즉 은행이 자기자본으로 주식과 파생상품으로 투자하는 것을 제한한 것이다. 또 퀀트를 통한 대량 초단타가 다른 투자자들과 불공정한 매매이기 때문에 규제했다. 메릴린치는 이에 퀀트팀을 해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 금지되고 팀이 해체됐지만, 이들 중 일부가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증권당국은 개인들이 공매도를 폐지해 달라는 의견, 만약 폐기가 안 된다면 기관과 동등한 조건에서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묵살해 왔다. 그런 증권당국이 국내에서 퀀트펀드를 금지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는 그저 메릴린치가 매수 상위에 있으면 우선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인 상황이다.
이번에는 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문제가 터지기 전 이상 징후 현상은 언제든지 있어 왔다. 증권당국은 부디 미국이 왜 퀀트 알고리즘 매매를 규제하고 있는지 신중히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