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은 죽지 않는다...‘현금 없는 사회’의 역행?

입력 2018-07-25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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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 의회에 ‘현금결제 거부는 위헌’ 법안 제출...현금 없는 사회가 카드 결제 불가능한 경제 취약계층 ‘역차별’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의 뱅크오브아메리카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사람들이 돈을 뽑고 있다. 뉴욕/로이터연합뉴스
현금 없는 사회는 이제 전 세계의 일상이 됐다. 한국에서도 점점 많은 사람이 현금 없이 직불카드와 신용카드만 들고 다니면서 지갑이 가벼워졌다. 심지어 카드가 없어도 토스나 카카오페이 등 스마트폰 앱으로 30초 만에 돈을 송금하고, QR코드로 결제하기도 한다. 이렇게 간편하고 빠르니 ‘현금 제로’ 디지털 경제는 결제를 포함한 모든 금융 활동에서 환영받고 있다. 디지털에 100% 의존하는 경제는 안전하고 완벽할까. 일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현금 없이 디지털로만 이뤄지는 경제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들이 생기면서 세계 곳곳에서 현금 회귀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례로 미국 워싱턴D.C. 시 의회에서는 일부 하원의원들이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사업장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워싱턴D.C. 내에서만 은행 계좌가 없는 시민이 전체의 10%를 차지하고 신용카드 이용 자격이 안 되는 시민도 25%에 달하는데 현금을 받지 않는다면 이들에 대한 경제적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법안을 공동 제출한 데이비드 그로소 의원은 “결제와 업무에 현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저소득자와 미성년자들을 거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영국에도 계좌가 없는 시민이 150만 명 이상이다. 가디언은 현금 없는 사회는 경제적 취약계층의 소비와 생계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한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금융활동이 지불업체와 은행 등에 의해 일일이 감시당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제기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공언하며 선두 주자로 나섰던 스웨덴도 ‘전면적 디지털 경제’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2월 스테판 잉베스 스웨덴 중앙은행 총재는 “(현금 없는 사회에선) 모든 지불 활동이 민간 은행에 의해 통제될 것”이라며 “완전한 디지털화를 위해선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일부 전문가는 예상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했을 때 경제권에 닥칠 어마어마한 결과도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자연재해로 전기가 끊기거나 디지털 범죄로 온라인이 잠식당한다면 현금 없는 사회의 금융 활동은 모두 멈출 수밖에 없다. 금융을 포함해 생활 전반을 ‘전기’라는 하나의 자원에 의존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 진출한 암스테르담팔라펠샵 체인의 아리안 베넷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를 쓸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워싱턴D.C. 의회에 제출된 법안을 지지했다. 특히 ‘현금 없는 결제 시스템’을 전면에 들고 미국에 진출한 유명 지중해음식 체인 카바도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계좌가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이유를 불문하고 현금 결제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반면 금융기업들은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를 환영하고 있다. 은행은 비용 절감과 계좌와 카드 등 서비스를 통한 영향력 확장을 위해 디지털 금융을 확대하고자 한다. 지불중개업체와 손잡고 현금과 현금자동인출금기(ATM) 사용을 불편하게 하고 재빠르게 대안을 제시하는 등의 전략을 펴고 있다. 각국 금융당국도 현금 없는 사회를 선호하는 추세다. 익명 결제를 최소화해 탈세와 지하경제를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스웨덴 등 많은 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경제를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ATM사업자연맹 대표인 마이크 리를 인용해 ‘100% 디지털’은 경제활동에서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며, 더 넓게 보아 경제적 자유의 일부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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