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 영장에 조세관련 혐의 빠져, 대한항공 설립 50주년 앞두고 중대 기로
조양호 회장이 구속 위기에 처하면서 한진그룹의 향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립 50주년(2019년)을 앞두고 중장기 비전선포를 준비 중인 대한항공은 혹시나 모를 총수 공백에 가능성에 흔들리고 있다.
3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종오 부장검사)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사기·횡령·배임,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 회장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애초 계획보다 하루 미뤄진 5일 오전 열린다.
검찰 측은 “사안이 중대하고 조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영장청구 배경을 밝혔다. 논란이 됐던 조세관련 혐의가 영장 내용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종 실질심사 결과에 한진그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약 2개월 전 조현민 전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에서 시작됐다. 이후 한진가(家)는 검찰과 경찰 세관, 법무부, 공정위 등 사정당국의 전방위적인 수사 압박을 받아왔다. 국토부는 미국 국적의 조현민 전 전무의 진에어 등기이사 선임을 두고 ‘면허취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법리검토까지 나선 상태다.
재계에서는 한진그룹을 향한 사정당국의 칼날이 “맹목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시작점이 조현민 전 전무의 갑질에서 시작된 만큼 "재벌가를 향한 여론몰이식 보복성 수사"라는 비판도 여기에서 나온다.
한진그룹 안팎에선 조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 영장 청구를 두고 이미 수차례 압수수색과 전방위 수사가 이뤄진데다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대기업 총수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구속수사는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항공은 창사 이래 가장 중요한 시점에 맞고 있다는 점도 총수의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대한항공은 내년에 설립 50주년을 준비 중이다. 반세기 동안 항공업계를 이끌어온 기업인만큼 대대적인 비전선포와 중장기 발전방안도 준비 중이다. 저비용 항공사가 속속 증가하는 항공업계에선 대한항공이 내년을 기점으로 도약하느냐 쇠락하느냐가 판가름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향후 5년 또는 10년을 내다보며 공격적인 선제투자가 필요한 항공업계의 특성상 총수의 결정권은 다른 기업의 그것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지난 5월 델타항공과 맺은 조인트벤처(JV)가 대표적이다.
항공업계는 자국 항공사 보호를 위해 국가간 인수합병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타항공사와 JV 체결은 최고수준의 협력관계다. 대한항공은 델타항공과 JV를 통해 최대 항공수요를 지닌 북미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델타측은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큰 대한항공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빠른 의사결정과 공격적인 투자는 필수. 자칫 인신구속으로 인한 총수의 부재가 오랜만에 잡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국제 경제단체에서 입지를 다져온 조 회장의 구속이 자칫 국가 위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조 회장은 현재 한미재계회의 회장과 한불최고경영자클럽 한국측 위원장 등 다양한 국제경제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여론에 이끌린 감정적 처벌이 아닌 순수한 법리적 검토를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절실하다”며 “진에어의 경우, 등기이사 선임에 대해 국토부는 6년간 걸러내지 못했으면서 이를 빌미로 법을 소급해가며 면허취소를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