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한 가지 큰 차이는 현대미술이 화랑 전시를 통해 생존 작가들의 신작을 시장에 공급하는 구조가 중심인 반면, 고미술은 그러한 신작 공급이 없다는 점이다. 증권 시장에 비유하면, 화랑 전시를 통한 신작 판매는 주식이나 채권의 발행 시장이고, 고미술품 거래는 손바뀜만 반복되는 유통 시장인 셈이다.
아무튼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 컬렉터는 시장을 떠나 컬렉션의 꿈을 이룰 수 없다. 컬렉션은 시장에서 값을 치르고 작품을 구입함으로써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속적인 타산에 충실하고 주머니 사정도 살펴야 한다. 주머니 사정도 사정이지만, 거래 정보를 확보하는 것 또한 녹록지 않다. 그런 제약을 넘어 컬렉션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시장에 나가 발품을 팔고, 그 생리를 체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미술 시장의 중심은 컬렉터와 상인이다. 여느 시장과 다른 점은 공급자와 수요자, 또는 중개자(상인)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그 기능과 역할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수요자인 컬렉터가 자신의 컬렉션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일부를 처분할 때는 공급자가 되며, 중개나 공급을 책임지는 상인들도 때로는 시세 차익을 노려 물건을 사들이는 수요자가 된다. 질 좋은 중고품 시장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한편 고미술은 오래되어 제작 또는 보존 기록이 희귀한 탓에 현대미술에 비해 작품의 진위(眞僞)가 거래 성사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정보 제약에 수반되는 리스크가 크고, 위작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진위를 감정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이들이 큰 역할을 한다. 또 일정한 가게는 없지만 자신만의 고객정보를 토대로 거래를 중개하고 구전을 먹는 거간이 있고, 이곳저곳을 돌며 물건을 수집하여 시장에 공급하는 사람들, 훼손된 물건을 수리·복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굴꾼, 장물아비는 물론 심지어 가짜의 제작과 유통에 관여하는 사람들도 직간접적으로 시장과 관계를 맺고 있다.
고미술 컬렉션은 그런 독특한 시장 환경과 거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인 실행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시적인 관심과 호기심으로 한두 점 사는 것이야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컬렉션이라 할 수는 없다. 일생을 통해서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컬렉션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듯 컬렉터는 시장과 더불어 컬렉션의 꿈을 완성해 가는 운명적인 존재다. 결코 시장의 자장(磁場)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건만 고미술 시장은 그런 컬렉터에게조차 쉽게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여인처럼 얄미운 데가 있다. 때로는 아름다운 물건으로 컬렉터를 유혹하고, 때로는 좌절의 쓴맛을 선사한다. 그뿐인가. 얕은 안목을 자랑하는 교만한 컬렉터에게는 가짜를 안기는가 하면, 작품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는 재력가에게는 꼬리를 치고, 그 가치를 알면서도 품지 못하는 가난한 컬렉터는 비웃는 데가 바로 고미술 시장이다.
오랜만에 고미술품을 제대로 견학할 수 있는 시장다운 시장이 섰다. (사)한국고미술협회가 대규모 판매전을 차린 것이다(인사동 아라아트센터, 6.27∼7.7). 이번 행사에는 선사시대 토기를 비롯하여 청자·백자·목가구·민속품· 민화 등 우리 고미술 전 영역에 걸쳐 약 2000점이 가격표를 달고 출품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고미술품을 마음껏 보고 구입할 수 있는 장인데, 둘러보다 눈에 들면 가야토기 한 점 또는 땟물 좋은 예천 떡살 한 점 흥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어렵지, 장담컨대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