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사회부 차장
선분양제는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1977년 주택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전체 사업비의 일부만 부담하면 일단 주택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주택 공급이 수월해진다. 하지만 사업비 대부분을 소비자들이 내고 수억 원에 달하는 주택을 완성품 없이 견본주택만 보고 구매해야 하는 점, 분양권 거래로 인한 투기 등이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때문에 정부는 2003년경 후분양제 전면 도입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 공공아파트를 시작으로 공공택지 내 민간 아파트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후 여러 반대 논리에 표류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며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최근 주택 공급 과잉과 함께 주택공급률도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나오며 후분양제 도입이 재추진되고 있다. 이미 2014년에 주택보급률이 118.1%에 달한 상황에서 투기 수요를 잡는다는 정부의 취지에 후분양제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선분양제는 나쁜 제도, 후분양제는 좋은 제도’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실제로 후분양제를 도입하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잃는 것도 적지 않다.
우선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분양가 상승은 불가피하다. 선분양제는 일종의 사전 예약 방식으로, 공사하기 전 가격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지만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건설사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고 공사 기간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공급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후분양제를 도입할 경우 3.3㎡당 300만~500만 원의 분양가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84㎡의 경우 1억 원 수준이다.
또한 선분양제에서는 계약 후 약 3년에 걸쳐 집값을 상환하지만, 후분양제에서는 계약 후 입주까지의 기간이 1년여에 불과해 소비자의 자금 조달 기간도 상대적으로 촉박하다.
자본력과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중소 주택전문 건설사들의 줄도산도 예상 가능한 문제다.
현재도 빌라나 다세대 주택의 경우 대부분 시공을 마친 후 분양하는 후분양제를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선분양제와 후분양제를 정답과 오답이 아닌 사업 규모에 맞는 제도 선택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후분양제 도입에 찬성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해외 분양 시장의 경우, 후분양이 일반적인 건 우리나라처럼 대단위로 아파트를 짓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는 자금 확보가 쉬운 선분양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후분양제가 도입될 경우 공정률 80% 수준에서 분양될 가능성이 큰데 건물의 위치나 방향 등은 볼 수 있지만 이는 내장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수준이기 때문에 하자 분쟁 등이 크게 줄어들기도 힘들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투기 문제는 분양권 거래를 제한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후분양제 도입은 이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왕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면 관련 업계와 소비자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단계적인 도입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ca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