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추돌 직전까지 회피기동 안 해 센서 기술적 오류 가능성…업계 ‘시험운행 전면 중단’ 충격 확산
세계 최대 차 공유 플랫폼 ‘우버(UBER)’의 자율주행차가 미국 일반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그간 자율주행차의 사고 소식은 ‘가물에 콩 나듯’ 전해졌지만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 우버 그리고 자율주행과 전혀 관련없는 일반 보행자가 목숨을 잃었다. 어떤 형태로든 자율주행차 개발에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 보행자 사망 사고 = 19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도시 ‘템페(Tempe)’에서 자율주행 모드로 시험 운행 중이던 우버 자율주행차가 보행자와 추돌했다. 피해자인 40대 여성은 사고 당시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 위를 건너고 있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녀는 숨졌다.
앞서 우버는 애리조나 피닉스와 템페 등에서 지난해부터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고 직후 미국 피츠버그와 샌프란시스코, 캐나다 토론토 등에서 진행하던 시험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우버는 “경찰의 사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며 “피해자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역시 현지에 조사팀을 급파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공용도로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에 급제동 = 사고 충격은 자율주행을 개발 중인 다른 자동차 및 IT업체로 확산됐다.
먼저 우버와 기술제휴를 계획 중이던 일본 토요타가 미국 현지 자율주행 시험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토요타는 우버와 함께 자율주행차 기술 공유를 계획 중이었다. 토요타 북미법인 대변인은 사고 이튿날 성명을 통해 “보행자 사망 사건이 우리 테스트 연구원들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운전자가 탑승하는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을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여파는 더 퍼졌다. 미국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누토노미(nuTonomy)’ 역시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을 중단했다. 앞서 보스턴 교통당국이 누토노미 측에 “보스턴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 테스트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누토노미는 2013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설립한 자율주행 스타트업으로 2016년 싱가포르에서 세계 첫 자율주행 택시의 시험 운행을 시작해 주목받은 바 있다.
누토노미 측은 “회사의 자율주행차 시험 운행이 높은 안전 기준을 계속해서 충족하는지를 확실히 하기 위해 시 당국과 협의 중이다”고 밝혔다.
◇보행자 추돌 전까지 ‘회피기동’ 없어 = 그러는 사이 교통사고의 원인 조사에 나섰던 현지 경찰이 사고 당시 블랙박스 화면을 공개했다.
사고차에는 최소 두 대의 카메라가 각각 전면과 실내 운전자를 향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현지 경찰 발표를 보면 사고를 낸 자율차의 운전석에는 자율주행 시험 연구원이 탑승한 상태였다. 경찰 예비조사 결과 사고차는 시속 35마일(56㎞/h) 운행 구간에서 시속 38마일(61㎞/h)로 주행 중이었다.
공개된 영상은 충격이었다. 영상을 보면 우버 자율주행차는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도로를 약 4초간 주행하다 보행자를 치었다. 보행자는 영상 속에서 정상적인 보행 속도로 몇 걸음 걷는 장면까지 포착됐다.
영상에 따르면 사고 당시 자율주행차에 타고 있던 우버 남성 직원은 전방을 주시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스티어링 휠 아래, 또는 전방 도로를 옮겨 다니고 있었다. 때문에 여성 보행자를 미리 감지할 수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고 영상에는 이 보조운전자가 약 10초 동안 아래를 보고 있다가 영상이 끝나기 1초 직전에 고개를 들어 깜짝 놀라는 장면까지 나온다.
무엇보다 볼보 XC90인 사고차는 피해자와 추돌하기 직전까지 긴급제동이나 급선회 등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떠한 ‘회피기동’도 행하지 않았다.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차라면 전방 보행자의 움직임을 충분히 감지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여기에서 나온다.
자율주행차는 어둠에 관계없이 전방 장애물을 파악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밝은 대낮보다 어두운 밤에 장애물을 인식하고 이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적게 나온다”고 언급했다.
◇전방 장애물 감지 실패…기술적 오류에 무게 = 우버 자율주행차에는 크게 레이더(Radar)와 라이다(Lidar) 센서가 달린다. 특히 차 지붕 위에 달리는 라이다 센서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 장애물이 없다면 저속에서도 전방 수백m를 탐지할 수 있다.
현지 경찰은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는 보행자가 차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게 마치 섬광(flash) 같았다고 진술했다. 운전자는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처음으로 충돌 사실을 인지했다”는 예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의 사전 분석을 보면 우버 자율주행차는 기술적 오류를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법학 교수인 브라이언트 워커 스미스는 현지 언론을 통해 “사고차에 달린 레이더와 라이다(레이저광 레이더)는 당연히 보행자를 탐지해서 정지 물체가 아닌 것으로 분류했어야 했다”며 기술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주간보다는 야간에 더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데 차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대학의 인공지능 전문 법학 교수인 ‘라이언 칼로’ 역시 “결론을 내리긴 이르지만, 영상으로 볼 때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면서 “이 영상으로 우버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라며 우버의 과실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현지 언론을 통해 “카메라는 보행자를 제때 감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왜 라이다마저 보행자를 감지하지 못했나? 왜 자율주행 프로그램은 보행자가 계속 길을 건너갈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나?”라고 의문을 던졌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자율주행차 기술 선점을 위해 관련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규제 강화 여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번 사고에 대한 경찰과 관계 당국의 조사 결과는 이르면 내달께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