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 기업금융부 기자
대학 때 적을 뒀던 한 시민단체의 지역 분회에서 회비가 사라진 일이 있었다. 분명 20만 원이 남아 있어야 했는데, 총무의 지갑에는 15만 원밖에 없었다. 회원이라고 해야 고작 8명.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것조차 민망했지만, 그럼에도 우린 그랬다. 의심은 인간의 본성인 것을 어찌하겠느냐며 서로가 서로를 추궁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후에 알았지만 한 회원이 교재를 회비로 산 뒤 다시 채워 놓는다는 것을 깜박해 벌어진 일이었다. 인의(仁義)로 넘어갔지만 법적으로는 공금 유용과 횡령에 해당하는 일이다.
돈이 고여 있는 곳에 감시와 규제가 없으면 사고는 필연이다. 돈의 규모가 많건 적건, 조직 규모가 크건 작건 상관없다. 개인의 양심을 믿으면 그 양심은 타인을 배신한다. ‘이 정도는 뭐, 요 정도야 괜찮겠지’라는 흔한 어구로 자신을 합리화한 뒤 해당 논리를 바깥에 적용한 경험이 없는 이가 드물 것이다.
고객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금융기관이 규제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직원 행동강령과 사이버 보안 체제를 제대로 갖췄는지, 개인정보는 잘 관리되고 있는지 등을 수시 점검해도 금융사고가 발생한다. 타인의 돈을 가진 금융기관이 정기 감사와 수시 검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국내 가상화폐 취급업소의 윤리·보안 의식은 엉터리 수준이다. 금융당국의 현장 점검을 통해 드러난 운영 실태만 봐도 취급업소 직원이 고객 투자금을 본인 쌈짓돈처럼 여겼다. 사이버 보안 체계를 갖추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었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일 것이란 게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가상화폐 취급업소를 면밀히 들여다봤을 때 코인은 제대로 있을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돈 버는 데에만 급급하면 논리는 그에 맞게 변형한다.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권으로 유입시켜 주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일부 주장이 그렇지 않은지 곱씹어 볼 때다.